라면업계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육성 중인 ‘건면 시장’이 정체하고 있다. 농심, 삼양식품, 풀무원 등 기존 라면 제조사뿐만 아니라 하림산업 등 새로 라면 사업에 뛰어든 기업까지 건면 라인업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 규모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건면 시장이 이처럼 정체인 것은 기름에 튀긴 ‘유탕면’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건면의 식감과 맛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건면이 내세우는 ‘건강한 라면’ 콘셉트가 라면 소비자들의 니즈와 맞지 않는다는 점도 성장을 막는 요소다.
성장 끝났나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면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6.7% 성장한 16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2020년 1178억원과 비교하면 36% 늘었다. 얼핏 보면 준수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지난해 국내 건면 시장의 소폭 성장은 2021년 ‘더미식 장인라면’으로 라면 시장에 진출한 하림산업의 몫이 크다. 하림산업의 지난해 라면 매출은 208억원이다. 이 중 비빔면 등 유탕면을 제외하면 실제 매출은 100억원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건면 시장의 성장분은 대부분 장인라면의 매출 증가에서 기인한 셈이다.
건면 시장의 선두 주자인 농심 역시 매출이 정체했다. 지난해 농심의 라면 부문 매출은 2조6798억원으로 전년 대비 8.5% 성장했다. 같은 기간 건면 매출은 전년과 동일한 1000억원을 기록했다.
건면 브랜드 중 눈에 띄는 제품도 많지 않다. 건면 시장 1위 브랜드인 ‘신라면건면’을 제외하면 연매출 200억원대 제품이 없다. 100억원 후반대 매출을 내고 있는 장인라면이 업계 2위 브랜드일 정도다. 신라면건면 역시 판매량이 줄고 있다. 출시 직후 6개월간 5000만개가 팔렸던 신라면건면의 최근 6개월 판매량은 2000만개 수준이다. 당초 목표로 삼았던 연매출 500억원 달성이 요원하다.
건면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건면 전문 브랜드까지 선보인 삼양식품과 풀무원도 고민이 많다. 삼양식품은 건면 전문 브랜드 ‘쿠티크’를 2022년 12월 론칭했지만 성과가 미진하다. 지난해 7월 투움바파스타를 출시한 이후 1년 가까이 신제품을 내지 못하고 있다.
풀무원 역시 건면 시장에서 쉽사리 덩치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하림산업은 장인라면이 건면 시장에서 농심에 이어 2위 브랜드로 올라섰다고 밝힌 바 있다. 라면업계 경쟁사인 오뚜기와 팔도엔 건면 라인업이 없다. 사실상 풀무원을 제쳤다는 이야기다.
건강하려고 라면 먹나
건면 시장의 성장 속도가 업계의 전망보다 느린 것은 ‘라면을 표방하면서도 라면에 미치지 못하는 맛’이 가장 큰 요인이다. 기름에 튀긴 유탕면은 스프와 함께 면을 삶으면서 기름기가 배어나와 국물을 진하게 만들어 준다. 면에도 국물이 잘 밴다. 태생적으로 건면이 따라오기 어려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건면은 ‘깔끔한 국물 맛’을 강조한다. 유탕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기름의 지방 맛을 더해주기 위해 신라면건면처럼 조미유를 더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존 유탕면의 진한 맛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건면은 맛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맛보다는 건강을 강조하는 건면 브랜드들의 마케팅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강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은 애초에 인스턴트 라면을 찾지 않는다. 실제 신라면건면의 경우 칼로리는 350㎉로 일반 신라면보다 낮지만 나트륨 함량은 1790㎎으로 동일하고 탄수화물 함량도 68g으로 79g의 신라면과 큰 차이가 없다.
튀기지 않은 면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쌀국수나 잔치국수 등 국수류부터 우동, 일본식 라멘 등 대체재가 많다는 것도 이유다. 이미 국내 면 시장에 자리잡고 오랫동안 맛과 기술력을 갈고닦은 ‘비(非)유탕면’ 카테고리가 있는데 굳이 건면 라면을 선택할 요인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라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진하고 얼큰한 국물에는 건면보다 유탕면이 잘 어울린다”며 “비빔면이나 짜장라면 등 볶음면류를 중심으로는 건면이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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