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안)을 공개하면서 시장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채찍이 없는 상황에서 자율성을 강조하다 보니 밸류업 테마주(株)를 노리고 사실상의 허위 공시로 투자자를 현혹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이 불성실공시법인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도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일 한국거래소·자본시장연구원 등 유관기관과 함께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를 열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안)을 공개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을 보면 그동안 우려 사항으로 꼽혔던 자율성이 오히려 강조됐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참여 여부뿐만 아니라 어떤 지표를 중심으로 서술할지, 향후 몇 년을 목표로 계획을 세울지 등 작성 내용도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중·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 방법은 산업의 특성이나 성장단계 등 기업의 개별 특성에 따라 다양하다”며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형식적이고 투자자 입장에서 활용도가 떨어지는 계획이 수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국은 모든 시장 참여자가 선의를 가지고 진심으로 정당하게 기업 가치를 올리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이미 밸류업 테마주가 생기지 않았나. 테마를 이용해 거짓 정보로 주가만 띄우려는 불공정한 행위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자율성에만 맡기기엔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사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상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불성실 공시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기업가치 제고 계획도 다른 기업공시와 같이 허위 공시 등에 따른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이 적용된다. 그러나 당국은 단순히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민우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기자들과 만나 “한국거래소 공시 규정에는 이미 예측 정보와 관련된 면책 규정 등이 마련돼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기업이 예측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면책 관련 공시 문구를 명시한다면, 기업 경영의 결과가 해당 예측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불성실 공시 적용 예외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해설서에 따르면 참고 서식의 공시 문구 예시는 다음과 같다. ‘이 계획은 당사의 경영 현황 및 영업 전망 등을 근거로 작성된 확정되지 않은 장래의 재무 실적, 사업 전망 등 예측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영업환경과 시장 상황, 회사의 전략적인 의사결정 등에 따라 실제 결과는 예측과 달라질 수 있으며 계획 사항은 향후 변경될 수 있으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이다.
이같은 설명에 금융당국 내부에서조차 염려하는 기류가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 문구를 명시하면 불성실 공시 적용 예외 대상이 된다는 건데, 미래 추정 실적을 바탕으로 이른바 ‘뻥튀기’ 상장을 한 파두 같은 기업이 또 나올까 봐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 법정 공시하는 데를 조사하는 데도 인력이 모자라는데, 자율 공시는 들여다볼 여력이 부족하고 사건이 터진 후에도 어느 기준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당국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앞으로도 계속 자율성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박 국장은 “상장사는 어떻게든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거둬들여 영업을 하고 사업을 확장하려 한다”면서 “그러려면 대중에 충분히 설명을 해줘야 한다. 이는 결국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등 밸류업 프로그램과 결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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