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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에세이]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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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들은 기업 활동의 일선에서 부조리한 상황들에 직면하곤 한다.
생산 작업장에서, 영업 현장에서, 세금과 관련된 회계 분야 등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도덕적 갈등을 겪으며 동시에 윤리적인 경영을 지켜나가려는 의지는 자주 위협을 받게 된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에서 이에 대한 성찰을 얻어보기로 하자.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했던 시설로, 당시 ‘성 윤리에 어긋난 짓을 저지른’ 여성들을 교화시키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죄 없는 소녀들과 여자들이 그곳에 감금된 채 폭행과 성폭력, 정서적 학대 속에서 노역에 시달렸고 그들의 아기들 또한 방치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무려 70여 년간 자행되어온 잔혹한 인권 유린에 대해 아일랜드 정부는 아무런 사죄의 뜻도 표명하지 않다가 2013년이 되어서야 뒤늦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 출판사 서평 中 –

1. 이처럼 사소한 변명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해야 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 (105쪽)

종교의 이름으로 정부의 묵인하에 인권이 유린당하는 만행이 저질러졌다. 무려 70여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거대한 힘에 의해 자행되는 거대 악惡에 대하여 외면하였던 것이다. 무력한 개인이,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기에도 벅찬 소시민들이 불의에 항거하여 결집한 세력으로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서사는 역사적으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여기서 세르반테스의 소설인 <돈키호테>에 나오는 명대사가 떠오른다. “현실은 진실의 적이지….”

사소한 자들에게는 사소한 변명이 필요하다. 어차피 바위에 달걀을 던진다고 바위가 부서질 리 없으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가 동원된다.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자기 합리화를 무사히 마친 사소한 자들에게 지극히 사소한 평안함이 찾아와야 하는데, 실은 그것 또한 쉽지 않다. 양심이라는 내면의 작은 괴물(?)이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돌아눕는 개인에게 슬며시 찾아와서 속삭인다. ‘정말 너는 다리를 뻗고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니?’ 이제 맘 편히 휴식을 취하며 안정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발생한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출처:이미지투데이]

2. 그토록 웅장한 명분들

“다 한통속이야” (117쪽)

개인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존립을 유지해야 하는 국가와 종교 기관이 자신들의 국민과 신도들의 정신 건강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神이 부여한 카리스마적인 명분을 제공해야 하는 필요가 발생하게 되었다.

막달레나 세탁소의 경우, 감히 토를 달지 못하게 하는 명분은 성 윤리에 어긋난 짓을 저지른 여성들을 ‘교화’시키고 ‘보호’한다는 휴머니즘이 물씬 배어나는 슬로건이었다. 힘없고 약자인 여성들이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사고를 치거나 당하여 예기치 못하고 반갑지 않은 사태에 직면했다. 이를테면 사생아를 잉태하여 출산까지 하게 된 그런 경우 말이다.

악(惡)의 시작은 매우 미약했을지는 몰라도 그 끝은 매우 창대해졌다. 무상으로 노동력을 얻게 된 수녀원은 (세탁비 수입은 물론이고 신생아 입양 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수익 사업이 가능해졌고, 그 이윤의 일부를 세금으로 얻게 되는 정부 역시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게 되었다. 법과 도덕과 윤리와 신앙 같은 숭고한 재료를 가져다가 탐욕과 폭력으로 범벅이 된 회칠한 무덤 같은 결과를 만들고야 말았다. 악취가 풍겨 사방에 퍼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우리가 속았구나….’

하지만 세탁소에서 제공하는 매력적이고 값싼 서비스에 중독되어버린 고객들은 사소한 편리함과 안락함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악惡은 늘 개별적인 악을 한데 모아 하나의 강력한 힘을 구축한다. 연루된 개별자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도록, 더 나아가 뻔뻔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함께 먹자고 꼬드긴 이유이기도 하다.

3. 지극히 사소한 위대함, 영혼의 세탁(정화)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쳐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120쪽)

주인공인 빌 펄롱은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불의에 대항한 인물이다.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자기 아내까지도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자고 회유할 때 과감하게 용기를 내는 인물이다. 수녀원에서 학대받는 한 소녀를 구출하여 지나치며 만나는 마을 사람들의 외면과 회피와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자신의 집 앞 문간까지 데리고 오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사실 그의 용감한 결단은 충동적이거나 도발적인 일은 아니었다. 소설 초반부터 무료하고 의미 없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점점 ‘속이 빈 자루가 되어 제대로 설 수가 없는’ 처지까지 이르게 된 것은 아닌가라고 자문하곤 했던 인물이어서 독자들은 충분히 그의 일탈에 동의하게 된다. (물론 만약에 자기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도저히 용기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 자조하면서)

그의 위대한 행위를 보면서 문득 성경 속에 나오는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떠오른다. 길가에서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는 한 사람을 종교 지도자(사제)와 종교종사자(레위인)는 못 본 척하고 스쳐 지나간다. 그들에게도 거룩한 명분이 있었다. 주석가들에 의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고, 그때가 절기 기간이었고, 성전에 들어가는 자는 (특히나 성전에서 주도적으로 예배를 주도해야 하는 자는) 몸과 마음이 정결해야 한다는 강력한 율법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에 쓰러진 자를 거두어 보살피려면 예배 시간에도 늦을 것이고, 자신의 몸에 부정한 피가 묻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을 기다리는 회중에게 큰 실례와 불편함을 초래하게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런 결과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이 보시기에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불경스러운 죄악을 저지르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합리화하였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저 나름대로 이유는 존재한다. 백 가지 악행에는 동시에 백 가지 핑계가 뒤따른다.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어서 마치 새 옷을 입고 밖에서 다니다 보면 어느새 옷이 더러워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다. 옷이 더러워지는 일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더러워진 옷을 빨아서 다시 깨끗하게 만드는 일은 게으르고 무감각해진 이에게는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극복해야 하는 의지를 동반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웬만해서는 스스로 빨래를 하지 않는다. 엄마가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도 정신적으로 아직 유년기에 처한 미숙한 자들이 영혼의 세탁을 타인에게 넘긴다. 때로는 신에게, 때로는 교회에, 때로는 정부에게, 때로는… 이렇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점점 속이 빈 자루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설의 소재가 하필이면 세탁소였음의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소설의 첫 시작에 왜 ‘흑맥주처럼 검게 변한 배로Barrow강(江)이 등장하는지, 또한 수녀원에 갇힌 소녀들이 왜 그 시커먼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버리고자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지가 명료하게 이해되기 시작한다. 거대하게 구축된 악 惡에 대응하기 위해 그만큼의 선 善이 단 한 번에 혁명적으로 동원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더러워지는 옷들과 영혼을 누군가에게 맡겨버리는 무책임한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다지고 뜻을 벼르면서 귀찮지만 엄연한 일상에서의 정화작업에 참여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 놀랍도록 사소하지만 위대한 지혜를 이미 살아오면서 언제부터인가 체득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펄롱이 자신을 키워준 미시즈 윌슨이 어릴 적 날마다 베풀어준 친절한 보살핌, 즉 영혼의 정화(세례)를 다시 기억하며 소설의 마지막 이후에 그렇게 살아가는 여정으로 자기의 빈 자루를 채워갈 것이라고 독자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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