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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봉 디자이너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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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봉 디자이너가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자신의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 박상선 기자

“작업실에서 5분 거리에 원룸을 구하고 두 곳을 오가며 디자인에 열중했지만 부족한 부분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 상태로 한달 넘게 고민한 끝에 결국 내 부족함을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매장에서 만난 이상봉 디자이너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이날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음날 몽골로의 출장이 예정돼 바쁜 기색이 역력한 그였지만 45년이라는 세월 동안 걸어온 길을 회상하며 차분히 발언을 이어갔다.

◇”사명감으로 디자인한 ‘한글’ 패션, 나도 몰랐던 매력 알았다”
1979년 패션 디자이너로 첫 발을 뗀 이상봉 디자이너는 경력 초기에는 기존에 만나볼 수 없는, ‘나만의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 외국의 패션지를 보지도 않고 ‘나’를 만드는 작업에 열중했다고 회상했다.

이 디자이너는 “나만의 스타일, 나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컸었다”며 “1985년에 신진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이뤄졌던 단체 해외 연수를 거절하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디자인이 완성되지 않았고 실력도 부족했기에 외국의 디자인을 접한다면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 같아 그런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몇년 후 이뤄진 해외 출장에서 국내업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색상을 강조하는 디자인을 만나며 변화의 계기를 마주하게 됐다. 그는 “그때 당시 우리나라는 전쟁의 여파로 소재나 색상의 다양성이 부족했다”며 “거기에 고심을 해서 내놓은 디자인이 이미 몇 십 년 전 해외에서 발표된 옷들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며 한계에 봉착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순간 떠오른 결심이 바로 ‘나를 인정하자’였다.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나를 사랑할 수 있고 그때부터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며 “내가 가진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타인에 대한 질투가 커지지만 이러한 감정이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때의 결심이 ‘국민 디자이너’ 이상봉을 만들었을까. 이후 그는 어느새인가부터 자신을 상징하는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이 세계무대에서 인정 받으며 고유한 존재감도 수립하게 된다.

이 디자이너는 “아마 2004년 즈음으로 기억한다”며 “그때 처음 선보이게 된 한글 디자인은 한글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시작했다”며 당시의 각오를 전했다. 이후 그는 한글을 기반으로 단청이나 창살 등 새로운 테마를 접목, 지금까지 20개에 가까운 디자인을 선보여 왔다.

그 과정에서 반성의 순간도 존재했다. 그는 “해당 디자인을 선보이기 전까지는 한글은 그저 문자의 한 종류로만 바라봤을 뿐이었다”며 “한글에 대해 미학적인 접근은 사실상 전무했다. 그러나 해외의 시각은 달랐다. 한글이라는 문자의 존재를 몰랐을 뿐더러,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한 한글의 디자인적 매력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고 당시의 충격을 전했다.

또 “이렇게 새로운 접근을 만나게 되니 그동안 우리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와 신선한 접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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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이상봉 디자이너/사진 = 박상선 기자

◇”기업 차원의 투자 이뤄져야···실무 중심의 교육도 중요”
이날 인터뷰에서 이상봉 디자이너는 국내 패션업계의 문제점도 지적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이 디자이너는 현재 패션업계의 관심이 디자인에만 쏠려 있는 점을 꼬집었다. 디자인과 함께 산업을 구성하는 다른 분야인 패턴과 봉제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국내 봉제산업은 사실상 전멸한 상태”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선 특성화고 등 전문적인 교육이 강화되고 정부 못지않게 연관 기업의 지원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산업의 한 축이 무너지면 그 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길 마련”이라며 “국가나 재정적 지원을, 기업이 인턴 등의 방식으로 업무 기회를 제공해 디자인과 패턴, 봉제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방대한 역사를 가진 국내 패션업계에 대한 관심도 촉구했다. 이 디자이너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명품 소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해외의 사례처럼 국내에도 공예박물관 등의 장소에 패션과 관련된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등 국내 패션의 역사를 접해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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