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투자은행(IB) 업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름은 다름 아닌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다. 홍콩에 기반을 둔 이 사모펀드(PEF) 운용사는 인수합병(M&A), 공개매수 시장에서 연일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어피너티가 이처럼 광폭 행보를 지속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투자하는 블라인드펀드 5호의 포트폴리오들이 대체로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어, 어떻게든 해당 펀드의 전체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야만 출자자(LP)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해 6호 펀드를 무사히 결정할 수 있다.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들어 어피니티는 ‘아시아퍼시픽 펀드 5호(Affinity Asia Pacific Fund V)‘와 관련된 투자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SK렌터카를 85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이 시작이었다. 예비입찰 한 달 전부터 매각 주관사 UBS와 접촉하며 적극적으로 인수를 추진했으며, 결국 국내 PE인 IMM프라이빗에쿼티와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를 꺾고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지난달 18일부터는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의 잔여 지분을 공개매수 중이다. 어피너티는 특수목적법인(SPC) ‘컨슈머스트렝스’를 통해 락앤락 지분 69.64%를 보유하고 있는데, 잔여 지분 30.33%를 장내에서 취득해 전량 소유하는 게 목표다. 락앤락을 100% 자회사로 만든 뒤 상장폐지하고 배당 확대를 통해 투자금 회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커머스 업체 SSG닷컴(쓱닷컴)의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을 놓고 신세계그룹과 줄다리기까지 하는 상황이다. 어피너티는 2019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5000억원을 들여 쓱닷컴 지분 15%를 샀는데, 쓱닷컴이 총매출(GMV) 요건과 기업공개(IPO)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어피너티는 최소한 원금 5000억원을 신세계그룹으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다.
한동안 IB 업계에서 잠잠하던 어피너티가 최근 들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이유는 5호 펀드의 부진한 투자 성적과 4조원에 육박하는 드라이파우더(미소진 자금) 때문이다.
어피너티는 지난 2018년 한국·일본·중국·호주에 주로 투자하는 60억달러(약 8조20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를 조성했다. 이 펀드를 통해 투자한 국내 기업으로는 락앤락과 SSG닷컴, 잡코리아, 요기요 등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심각한 몸값 하락과 실적 부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요기요의 경우 또 다른 주주 GS리테일이 작년 사업보고서에 반영한 지분 30%의 장부가가 1341억원이었는데, 이는 전년 대비 반토막 난 수준이다.
락앤락의 기업가치는 어피너티가 인수할 당시 1조원에 달했지만 현재는 37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최근 공개매수를 실시하면서 많이 오른 것이지, 2022년 말부터 최근까지 1년 넘게 2000억원대 중반의 시총을 유지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이번 락앤락 공개매수는 ‘눈물의 물타기(주가가 하락할 때 추가매수해 주당 평균 단가를 낮추는 것)’ 시도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SSG닷컴은 2021년 기업가치 10조원에 상장을 추진했지만, 현재 컬리 등 비교기업의 밸류에이션을 적용하면 몸값이 1조3000억원에 불과하다. 이를 기준으로 추산한 어피너티의 보유 지분 가치는 2000억원도 안 된다. 지금 어피너티 입장에선 풋옵션의 효력을 인정받고 주식을 5000억원에 되파는 게 본전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 사모펀드(PE) 관계자는 “교보생명과의 풋옵션 분쟁이 수년간 장기화하고 있는 만큼, 신세계그룹과도 법정공방을 시작하면 또다시 돈이 장기간 묶일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어피너티가 벼랑 끝에 서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현재 남아있는 4조원 가량의 드라이파우더로 ‘말도 안되게 성공적인 딜’만 성사시켜야 펀드 내부수익률(IRR)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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