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금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왔다. 총선에서 대승한 야당이 추진 중인 정책인데, 이를 집행할 당국과 기관이 재원을 쓸 ‘명분’도 ‘여력’도 없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피해자의 전세 보증금 반환채권 관련 평가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제3자 피해 가능성도 제기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3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HUG 역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의 실현 가능성 등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이 특별법 개정안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을 공공이 우선 매입해 지원하고 매각 등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내용의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골자다.
현재 법안은 야당 단독으로 안건조정위원회를 거쳐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으며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상태다. 야당은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 법안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5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법 통과를 기점으로 1개월 후 해당 법을 시행해야 한다. 1만5000여명이 넘는 전세사기 피해자와 향후 늘어날 것으로 추산되는 약 3만여명 피해자에게 즉각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보증금 반환채권 관련 평가기준이 명확지 않은 데다, 일을 추진할 인력도 재원도 아직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안 실효성이 낮고, 보다 구체적인 논의와 사회적 합의 등 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기준 미비, 인력·재원도 부족 “실현가능성 낮아”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택선 HUG 준법지원처장은 개정안 관련 다양한 법적 문제를 제기했다.
김 처장은 “보증금 반환채권 관련해 공정한 가치평가라는 추상적 기준만 제시하고 있다”면서 “채권매입기관이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명확히 하고, 매매대금 평가시점, 지급 시기, 회수방식 등 채권매수와 회수방식 차이에 따른 평가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이 선순위 채권을 할인 매수하도록 하고 있고 그로 인한 이익을 임차보증반환 채권 평가금에 가산하도록 하고 있어 제3자 피해 가능성도 제기됐다. 피해 보전을 극대화하면서 전세사기와 무관한 제3자 재산권 침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재원 문제도 거론됐다. 이장원 국토교통부 전세사기 피해지원단 피해지원총괄과장은 “개정안은 주택도시기금으로 채권매입 비용을 충당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기금의 여유자금은 청약통장에서 빌린 돈으로 다시 내줘야 하는 부채”라며 “이를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기금의 본래 활용 성격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주택청약저축 가입자가 줄면서 주택도시기금 수입이 줄고 지출은 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신생아 특례 대출 등 정책적 지원이 늘면서 기금 지출은 증가세다. 2021년 49조원에 달했던 기금 여유자금은 지난해 말 18조원, 올해 3월에는 13조900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주택도시기금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전세사기 보증금 반환채권 매입에 활용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해 각종 업무를 실행할 HUG와 캠코 등 공공기관에 필요한 인력과 재원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채권을 매입해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한다고 해도 회수가능성이 낮아 공공기관이 대규모 부채를 떠안을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였다.
행정적 필요 재원이 수천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반대 논리도 동원됐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현재 1만5000명에서 향후 약 3만여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전세사기 피해자의 권리 상황파악 등을 위한 인력, 행정적 비용이 적게는 1000억원에서 3000억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장원 과장은 “수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세사기 피해자 선구제 방안 지원을 위해서는 채권매입을 비롯해, 신청접수, 가치평가, 양도계약서 체결, 회수, 경매 등 다양한 업무들이 요구되는데 수십명의 인원으로도 부족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지원 금액이 5000억원에서 4조원까지 예상되고 있는데 행정비용만 3000억원에 달하는게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또 “지원금액도 가치평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채권 평가 과정에서 등기부 등본상 정부가 조세체납액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민사집행법상 법령에 채권확인절차 등이 선제적으로 마련되지 않으면 법안이 통과돼 시행된다고 해도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현재 개정안과 관련해 수많은 문제점과 절차 미비 등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미비점이 보완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 시행되면 혼란이 가중되고 지원은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재원인 기금과 관련해서도 본연의 기능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정한 가치평가를 어떻게 할지 등 법안을 좀 더 명확히 하고 전세사기 이외 사기피해자 지원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 등 공감대 마련 등이 전제된 이후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유한양행, R&D 투자로 영업이익↓
- [새책] 자산을 지키는 가장 완벽한 절세 비법
- BNK금융, 충당금 부담에 순익 ‘뒷걸음질’…지방 경기 직격탄
- “주택 공급절벽” 경고 1주만에…국토부 “통계 틀렸다” 고백
- 우리운용 ‘리츠 ETF’ 출시…해외부동산 제외해 삼성·미래에 도전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