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을 잊은 법률가, 부패한 판사, 정신 나간 변호사들에게 보내는 경고는, 그림으로는 15세기 플랑드르 지역(오늘날 벨기에)에서 활동한 제라르 다비드(1460~1523)가 그린 ‘캄비세스 왕의 재판’ 그림 두 장, 글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희곡 대사 “우선 말이야, 법률가(변호사)들부터 모조리 죽이자고!(The first thing we do, let’s kill all the lawyers)” 한 줄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비드가 당시 플랑드르의 도시 브뤼헤 시의회의 주문을 받아 그린 ‘캄비세스 왕의 재판’은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에서 있었던 일을 그린 것인데, 헤로도투스가 ‘역사’에 쓴 그 일이라는 게 이런 것이더군요(이 그림은 지금도 브뤼헤의 박물관에 걸려 있습니다.).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 2세는 자기가 임명한 재판관 시삼네스가 돈을 먹고 불공정한 판결을 한 걸 알고는, 이런 일이 또 벌어지면 페르시아에서 정의는 사라지고 억울함과 분노만 가득해진다고 보았던지 법관 의자에 앉아 있는 시삼네스를 체포합니다. 이 장면이 다비드의 ‘캄비세스 왕의 재판’ 그림 두 장 중 첫 번째(아래 왼쪽)입니다.
두 번째 그림은 잡혀 온 시삼네스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끔찍한 벌을 받는 장면입니다(캄비세스는 적을 살려 두지 않은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이 그림에는 처형대에 누워 가죽이 벗겨지는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있는 시삼네스의 아들이 보입니다. 캄비세스의 명령으로 처형 내내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있어야 했던 아들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세세한 묘사가 그림을 더 돋보이게 한다는군요.
캄비세스는 시삼네스의 아들을 판사로 임명합니다. 오른쪽 위 구석,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판사가 된 아들의 모습인데 그가 앉아 있는 의자의 흰 덮개는 시삼네스의 가죽으로 만든 거라고 합니다. 캄비세스는 이 의자에 앉는 페르시아의 법관들에게 “너도 부정한 짓을 저지를 테냐? 죽어서 껍질이 벗겨져 볼 테냐?”라는 경고를 보낸 거겠지요. 그 경고는 잘 벼른 페르시아 칼날보다 날카롭게, 마른하늘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울렸을 겁니다.
“우선 말이야, 법률가들부터 모조리 죽이자고!”는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 2부 4막 2장에 나옵니다. 헨리 6세는 15세기 중반 영국 왕이었지요. 그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자 삼촌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 삼촌의 꼬드김에 덩달아 반란에 뛰어들었던 ‘민초’ 중 한 명, ‘백정 딕(Dick the Butcher)’이 반란이 성공할 듯하자 읊은 대사입니다. 이 연극에는 딱히 법률가(변호사)가 등장하지 않으니 어떻게 보면 맥락 없이 나타난 뜬금없는 대사라고 해도 무방할 터인데, 셰익스피어 희곡 중 명대사로 꼽히고 있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부정한 법률가들이 많아지고 그들에게 피해를 본 ‘민초’가 더 많아졌기 때문일 겁니다.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 다녀온 한 지인은 기념품 가게마다 이 구절을 써놓은 마그네틱 등 여러 기념품이 수북하게 쌓여 있더라고 이야기해주더군요. 뉴욕의 한 연극 전용 극장에서는 이 대사가 인쇄된 머그잔을 판다는데, 월스트리트 증권가 같은 뉴욕의 거리에 악덕 변호사가 득실거린다는 걸 말하려 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마존에서도 이 대사가 적힌 티셔츠나 머그를 인터넷으로 팔고 있더군요.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에 이어 쓴 ‘헨리 8세’에서는 법률가 중 법관만을 콕 찍어 비판했습니다. “하늘은 모든 것의 위에 있고 거기에는 판사가 앉아 있지. 어떤 왕도 그를 부패하게 만들 수는 없어(Heaven is above all yet; there sits a judge, That no king can corrupt.)” 이 대사는 16세기 중반 영국을 다스렸던, 그 유명한 헨리 8세로 인해 불공정한 재판을 받고 처형되는 울지 추기경의 대사입니다.
며칠 전 ‘나라의 장래가 판사 몇 사람 손끝에 달렸네’라는 글을 읽다가 시삼네스의 가죽으로 만든 의자 이야기와 백정 딕의 “변호사들부터 죽이자”라는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이 글 필자는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과 아리랑TV 사장 등등을 지낸 원로 언론인 김명식(1941~ ) 씨입니다.
지난 25일 ‘마르코 글방’이라는, 우리나라 여러 분야의 관록 ‘묵직한’ 분들이 필자이자 서로 독자인, 글 카페에 올린 이 글에서 필자는 “민주당 대표 이재명과 조국혁신당 대표 조국의 재판이 어떻게 결론지어질 것인가, 이 재판들의 결과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어떻게 결정지을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화되고 편이 나뉘었으며 아첨할 데를 찾아 눈치를 보고 잔머리를 굴리며, 판사직을 정치적 출세의 발판, 재산 형성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2024년 현재 한국의 법관들에게서 공정한 판결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엄중하고 준엄한 질문에 경솔하게 나서 답하는 대신 나는 한국의 모든 법정, 법관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법대 맞은편 벽에 ‘캄비세스왕의 재판’ 그림이 크게 걸려 있는 걸 상상해 봅니다. 법관들의 의자는 시삼네스의 아들이 앉았던 의자와 색깔과 모양이 닮은 것으로 바꾸고요. 그들의 사무실 책상에는 “법률가부터 모조리 죽이자”가 쓰인 명패 같은 걸(영국 셰익스피어 생가 마을에서 사 와도 됩니다) 하나씩 두었으면 더 좋겠군요. 검사와 변호사들도 법률가이니 이런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판사가 어떤 유혹과 불의와 압력에도 타협, 굴복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이고 실천한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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