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720일 만에 첫 영수회담을 가졌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두 사람의 첫 공식 만남을 통해 극한 대치로 치닫는 여야 사이에 돌파구가 생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영수회담의 공통주제였던 ‘민생’ 분야의 해법을 두고도 견해 차를 좁히지 못했다. 다만 이번 영수회담은 그동안 대화가 실종됐던 여야 관계에 물꼬를 틈으로써 앞으로 ‘협치’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시각이 나온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29일 오후 2시 쯤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나 2시간 넘게 대화를 가졌다. 이날 회담에는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대변인이 배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를 만나자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하고 팔을 두드리며 반가워하는 자세를 보였고 이 대표도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며 회담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 대표는 본격적 회담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미리 준비한 메시지를 읽으며 윤 대통령을 향해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과 야당의 요구사항을 쏟아냈다. 이 대표는 720일 동안 없었던 대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듯 원고를 손으로 넘겨가며 모두발언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먼저 정부여당이 야당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갈 것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해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지금부터 정치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걸 언론에서 봤고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것이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노력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거부권이나 시행령을 통해 국회의 입법권이 무력화되는 점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과도한 거부권 행사나 입법권을 침해하는 시행령, 인사청문회 무력화 같은 조치는 민주공화국의 양대 기둥이라고 하는 삼권분립,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일”이라며 “입법부와 행정부는 견제와 균형 속에 국정을 함께 이루는 수레의 두 바퀴인데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굴복시키려고 하면 성공적 국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쓴 소리’를 경청하면서 중간 중간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태도를 지적한 이 대표는 이른바 ‘이채양명주'(이태원참사, 채상병 사망사건,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명품백 수수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관해서도 윤 대통령이 전향적 자세를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채 해병 순직사건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대책 강구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채 해병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실 것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리고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 되고 있는 가족 분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들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이 대표는 민생회복지원금 검토, 종합적 저출생 대책 수립, 재생에너지 정책기조 변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 대일외교 등에 있어 국익중심 실용외교 등을 언급했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 국정기조 대부분에 변화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의 모두발언에서 날카로운 쟁점만 언급된 것은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과 ‘연금개혁’에 민주당이 협력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 대표는 “의대정원확대와 같은 의료개혁은 반드시 해야 될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며 “국회 공론화 특위에서 여야와 의료계가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이 마련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연금개혁에 관해서는 “대통령께서 과감하게 연금개혁을 약속하시고 추진한 점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최근에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소득대체율 50%, 보험료 13%라는 개혁안 마련됐는데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개혁안 처리 나서도록 독려해주시길 바라고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긴 모두발언을 들은 뒤 “평소에 우리 이 대표님과 민주당에서 강조해오던 얘기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고 간단히 대답하며 비공개 회담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애초 특정 의제를 정하지 않았던 데다 이 대표가 국정의 전반에 걸쳐 목소리를 낸 만큼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실질적 합의 성과를 바로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됐다.
다만 역대 영수회담들도 합의를 이끌어낸 사례가 매우 적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8번을 만났다. 하지만 2000년 6월 의약분업 문제와 관련해 ‘예정대로 의약분업을 실시하되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약사법을 개정한다’는 합의를 이뤘을 뿐 나머지 7번 회담에서는 별다른 합의가 없었다.
그 뒤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5번의 영수회담이 열렸지만 이견만 확인한 채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이날 영수회담에서도 민생지원금을 포함한 민주당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의대 증원, 연금 개혁, 민생 우선 등 큰 방향에서는 뜻을 함께 했다. 특히 앞으로도 만남을 갖기로 합의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뒤 가진 브리핑에서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나든지 여야 협의체를 구성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도 이 대표에게 영수회담의 소회를 물어보자 “국정 기조가 바뀌지 않는 거 같아 답답하다면서도 만남의 물꼬를 텃다는 데 의미를 두자고 했다”고 전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이날 YTN뉴스에서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힘든 소상공인, 자영업자, 전세사기 피해자 등 서민들의 지원과 의정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같이 하는 정도만 되더라도 상당한 성과로 볼 수 있다”라며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윤 대통령이 자주 또 만나자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오늘 회동 자체가 실패작이 아니라고 본다”고 바라봤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도 “김대중 대통령도 재임 중에 8번 영수회담을 했지만 원포인트로 하면서 성과를 내왔다”며 “예를 들어 다음에 의료갈등 원포인트로 만나는 영수회담이 이뤄지면 구체적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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