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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즘? 그래서 뭐”…현대차‧기아의 거침없는 생존본능 [박영국의 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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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 상황에도 하이브리드 호황으로 호실적 지속

코로나 팬데믹 시기 공격적 신차 출시로 ‘보복소비’ 수혜

중국 시장 부진 이전 전 인도 시장 공략해 새 성장동력 선제 확보

서울 양재동 현대차‧기아 본사 전경. ⓒ데일리안 DB
서울 양재동 현대차‧기아 본사 전경. ⓒ데일리안 DB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정체기)으로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현대자동차와 기아 형제는 환호를 터트렸다.

기아는 1분기 3조425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9.2%나 증가한 규모다. 사상 최고 분기 영업이익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2조8000억원 내외의 영업이익을 예상했던 증권사들은 체면을 구겼다. 영업이익률은 13.1%에 달한다.

현대차의 1분기 영업이익은 3조5574억원이었다. 전년 동기에 비해서는 줄었지만 낙폭은 2.3%에 불과했다. 영업이익률은 8.7%로 준수한 수준이다.

이쯤 되면 남들이 겪는 위기를 우습게 넘기는 DNA라도 있는 듯하다.

“캐즘? 캐즘 맞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위기 상황이면 흔히 나오는 말이 있다. ‘위기는 곧 기회.’ 하지만 모두가 위기를 기회로 삼진 못한다. 손 놓고 있다가 위기가 닥친 뒤에야 부랴부랴 손을 휘젓는다고 순순히 잡힐 기회가 아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1분기 호실적 배경은 하이브리드차 호황이다. 높은 가격과 충전인프라 부족으로 전기차에 등을 돌린 소비자들이 몰린 곳이 하이브리드차다.

현대차와 기아는 10년 넘게 하이브리드차를 만들어 팔며 기술력과 상품성을 축적했다. 한때 일반 내연기관차에 비해 제조원가만 높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품목이었지만 참고 버티며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한 결과 지금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데다 수요까지 받쳐주는 효자 품목이 됐다.

전기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던 2021년, 일찌감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 아이오닉 5와 EV6를 내놓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모델을 출시하며 전기차에 ‘올인’ 하는가 싶었지만, 캐즘이 닥치자 하이브리드차를 뒤춤에서 꺼내들었다.

누구는 전기차 대응이 늦다는 지적을 받고, 누구는 그동안 하이브리드차 안 만들고 뭐 했냐고 욕을 먹는 사이 어떤 시장 변화에도 거침없이 대응하는 현대차‧기아의 생존본능이 얄미울 정도다.

사실 현대차‧기아는 이전에도 위기 상황에서 판을 뒤엎는 스킬을 몇 차례 선보였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한창이던 2020년, 모든 자동차 업계가 몸을 사리던 그때가 하필 현대차‧기아에게는 주력 차종들의 모델체인지가 몰리는 ‘신차 슈퍼사이클’이었다.


남들이 동면(冬眠)에 들어간 시기에 굳이 신차를 대거 내놓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외부의 시각을 철저히 무시한 채 현대차는 신형 투싼, 아반떼, 스타리아, 제네시스 G80, GV70, 등 신차들을 예정된 스케줄대로 출시했다. 기아 역시 쏘렌토, 카니발, K8 등 볼륨 차급에서 신차를 잇달아 시장에 내놨다.

“이제 망할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보복소비’라는, 예상치 못한 소비 트렌드가 시장을 휩쓸었다. 집안에 갇혀 있다 홧김에 돈을 쓰러 나온 소비자들을 현대차와 기아는 경쟁력 높은 신차들을 구비한 채 맞이했다. 그 덕에 2022년에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 3위의 자리까지 올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3일(현지시간) 하리아나(Haryana)주 구르가온 (Gurgaon)시에 위치한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에서 인도권역본부 임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3일(현지시간) 하리아나(Haryana)주 구르가온 (Gurgaon)시에 위치한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에서 인도권역본부 임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한때 현대차‧기아의 고속 성장을 뒷받침해줬던 중국 시장에서 이른바 ‘사드 보복’ 사태로 한국 기업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줄 알았다. 현대차‧기아의 중국 판매량이 급감하는 사이 중국 현지 기업들이 고속 성장하면서 그 자리를 채웠으니 상황은 절망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부진에도 불구,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판매실적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중국을 넘어서는 인구대국인 인도 시장을 새로운 성장동력 삼아 열심히 공을 들여온 결과다.

인도의 승용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410만대로 중국, 미국에 이어 3위에 해당하지만, 인구 수와 경제 규모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앞으로 성장 여지가 무한하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제너럴모터스(GM)가 인도 시장에서 철수하며 내놓은 공장까지 매입했다. 올 하반기 이 공장의 개조공사가 완료되면 현대차와 기아를 합해 인도 내에서 150만대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는 현대차그룹 해외 생산기지 중 최대 규모다.

최근 인도를 방문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인도를 글로벌 수출 허브로 육성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장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언제든 새로운 위기가 닥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차‧기아는 어떤 위기건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과거의 사례를 통해 증명했다.

설령, 극단적 사례로 전기차 시장이 캐즘이 아니라 몰락(전기차, 배터리 기업 주식에 투자한 이들에게는 뒷목을 잡을 가정이겠지만)을 맞이하더라도 현대차‧기아는 “그래서 뭐”를 외칠 듯하다. 이들은 전기차의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는 수소연료전지차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과 양산 경험을 갖춰놓고 있기 때문이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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