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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영의 금융TMI]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된 ‘정책금융’…부동산PF에도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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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뉴스를 접해 보면 궁금증이 생기기 일쑤죠. 당장 오늘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에도 바빠 맥락과 배경까지 꼼꼼히 짚어주는 뉴스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과도해도 정보가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금융TMI]에서는 금융 정책이나 용어, 돈의 흐름, 히스토리 등을 쉽게 설명해 전달하고자 합니다. 따분하고 어렵기만 한 금융 기사를 친절한 ‘TMI(Too Much Information)’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2022년 말 레고랜드부터 부동산 PF 부실·중동사태까지
위기마다 ‘시장안정 프로그램’ 확대에 정책금융기관 역할↑
한국금융연구원 “정책금융의 효율적 운영·사후관리가 중요”
“유동성 위기 상황 땐 적극 개입해 신용위기 확산 막아야”

사진제공=금융위원회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시장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이란-이스라엘간 군사적 충돌에 따른 시장 영향과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94조 원 규모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적극 대응하겠다”

이달 15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중동사태 관련 긴급 시장점검회의’를 열고 이같이 밝혔습니다. 이란-이스라엘 간 군사적 충돌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는지 살피고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중동 사태가 단기적으로 국내 금융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만일 사태가 악화해 시장 불안이 발생하는 경우, 이미 가동 중인 ‘94조 원 규모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대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시장안정 프로그램이 대체 무엇이길래 중동사태 악화 가능성에 대비한 대응책의 ‘중심’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시장안정 프로그램’은 이번 중동사태 대응 발표 때 처음 언급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최근 금융위원회 발표에서 자주 등장했습니다. 시장에서 위기가 터질 때마다 금융위가 시장 변동성을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내놓는 대표적인 대책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가동되던 시장안정조치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자주 언급되기 시작한 시기는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때입니다. 강원도가 보증을 선 채무를 갚지 않겠다고 하면서 발생한 채권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당시 금융위는 ‘50조 원+알파 규모의 시장안정조치’를 마련했습니다. 유동성 공급을 위해 정책금융기관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의 한도를 2배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사진제공=금융위원회지난해 10월 5일 금융당국은 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주재로 기재부·국토부·정책금융기관·금융권과 함께 9월 26일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의 금융분야 과제 추진계획을 점검하고 시장참여자들의 의견을 듣는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서는 정상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21조 원 이상의 추가지원 여력을 확보하는 정책금융기관의 부동산 PF 금융공급 확대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와 건설사 지원 조치가 추가돼 지난해 말 기준 85조 원 수준으로 확대됐습니다. 금융위는 지난해 9월 기재부, 국토부와 함께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으로 정책금융기관의 부동산 PF 금융공급을 키웠고, 올해 1월에는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해 부동산PF 연착륙과 주택시장 및 건설업계의 정상화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이밖에 최근에는 PF 사업장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 건설사의 금융애로 해소를 위해 PF 사업자 보증공급을 추가로 확대했습니다. 이 모든 조치가 합쳐져 2022년 말 ‘50조 원’에서 시작된 시장안정 프로그램의 규모가 올해 앞서 김 위원장이 말한 ‘94조 원’이 된 것입니다.

정책금융, 위기마다 나오는 ‘시장안정 프로그램’의 핵심

자료제공=금융위원회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시장 전문가들과 함께 금융시장 현안 점검․소통회의를 열었다. 당시 2022년부터 가동 중인 시장 안정 조치들의 운영현황,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레고랜드 사태, 부동산 PF 위기, 중동사태 등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위기들이 나올 때마다 시장안정 프로그램은 시장 불안을 낮추기 위한 장치로 사용돼왔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매번 언급되는 기관이 있습니다. 바로 ‘정책금융기관’입니다.

정책금융기관에는 KDB산업은행(산은), IBK기업은행(기은), 수출입은행(수은), 신용보증기금(신보), 기술보증기금(기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금융시장의 안전판 기능’을 수행합니다. 앞서 언급한 금융시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위기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시장논리에 따라 자금 확보가 어려운 창업기업, 혁신형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자금을 공급합니다. 국내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또 경제위기 속에서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직접 지원 대상에게 돈을 쥐여주기도 하고(대출) 기업의 상황이 어려워져 자금을 갚지 못할 때 ‘대신 갚아주겠다’고 금융기관에 약속(보증)하기도 합니다.

융자(대출)는 중소기업 등 특정 정책금융 대상에 대해 정책금융기관이 자금을 대출하는 방식입니다. 직접 돈을 주는 지원법이다 보니 정책금융기관이 목표 고객을 명확히 설정하고 정책적인 의지가 큰 경우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증은 가장 흔한 지원방식입니다. 자금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해 갚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해당 보증기관이 대신 지급하는 것을 담보(보증)하는 것입니다. 신보, 기보의 경우, 중소기업에 보증을 제공해 중소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자료제공=한국금융연구원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금융위원회의 연구 용역을 수행해 ‘정책금융 성과평가 및 민간중심 운영시스템 구축 방안’ 보고서를 냈다.

취지만 보면 정책금융기관의 지원 강화는 하면 할수록 좋은, 매번 ‘필요한 조치’인 것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현행 정책금융 운용 방식에 살펴봐야 할 여러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 정책금융 지원에서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 대표적인 한계로 꼽힙니다. 산은, 기은, 수은은 정부의 손실보장이 있긴 하지만, 자체적인 자금조달과 자산운용이 기본입니다. 또, 신보와 기보 등은 은행과 정부의 출연금을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운영하는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은 기관의 수익성, 건전성 등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해 자금조달과 운용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한국금융연구원은 한정된 자금으로 보증을 지속해서 확대하는 경우, 정책금융기관의 부실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에 적정 레버리지를 설정하고, 리스크 관리에 철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기관의 한계를 반영해 실현 가능한 정책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얘기입니다.

정책자금의 비효율적인 배분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점차 커지는 만큼 초기기업,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 등 정책금융 본연의 목적에 맞는 수혜자에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오히려 민간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이 정책금융을 이용하려는 유인이 발생하고 정작 민간 금융을 활용하지 못하는 기업은 정책금융을 이용할 기회가 사라질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것이지요.

연구원은 경쟁력이 충분하거나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은 정책금융 지원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정책금융 대상이 되는 기업의 ‘옥석 가리기’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경쟁력이 충분하면 민간 금융 중심으로 금융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타당하고 이미 경쟁력을 상실해 사후적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산업의 경우, 사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므로 정책금융기관보다는 법원의 기업회생절차, 사모투자펀드(PEF), 워크아웃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이밖에 정책금융기관의 사후 관리도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보고서는 “정책금융기관은 단순히 자금을 집행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에 대한 사후관리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도덕적 해이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며 “사후관리를 통해 지속해서 지원기업의 실태를 파악하고 컨설팅 등의 비금융 서비스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후관리에는 모니터링, 인센티브지급, 구조조정 유도 등이 있습니다.

정책금융 ‘확대일로’ 걸을 수밖에…반복되는 규모 확대 속 무엇을 봐야 할까

사진제공=금융위원회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이달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금융 애로점검 협의체 1차 회의를 개최했다. 오 장관은 “앞으로 중기부는 중소기업·소상공인 정책금융을 운용함에 있어, 소상공인의 상환부담 경감 등 지원책을 적극 강구해 나가는 동시에, 중소기업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정책금융 공급을 강화해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경기침체와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는 정책금융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구정한 선임연구위원은 “정책금융은 민간금융으로부터 자금조달이 어려운 시점, 단기간에만 사용하고 이를 토대로 민간 금융에서 자생하도록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민간금융시장에서의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신용위기 상황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구 연구위원에 따르면 정책금융은 계속 확대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유지되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늘어날 것이고, 중동사태 장기화와 더불어 예측할 수 없는 해외 경제 충격 등 외부 요인이 발생하면 그때마다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금융 지원 늘리기’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정부가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하거나 ‘시장안정 프로그램의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반복적으로 발표할 때 단순히 “‘어려운 곳에 지원금을 주겠다’는 뜻이구나”라고만 받아들이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정책금융 확대 과정에서 도리어 정책금융기관이 부실에 빠질 위험은 없는지, 정책자금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지는 않는지, 자금 집행 이후 사후관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감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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