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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성패 이사회 역할에 달렸다” 학계·기관 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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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내달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공개하기 앞서 학계와 행동주의펀드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학계와 행동주의 펀드는 지배구조 개선을 1순위 과제로 꼽으며 이를 추진하기 위해 제도 손질이 필요하고 제언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을 포함해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화, 내부거래 공시 강화, 주주 집단소송 활성화 등 다양한 요구가 나왔다.

반면 금융위원회에서는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기업들의 반감을 줄이고 실천가능한 가이드라인부터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파크원NH금융타워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 성공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한 정책심포지엄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백지현 기자 jihyun100@

“밸류업 추진할 골든타임”

한국증권학회는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파크원NH금융타워에서 ‘기업 밸류업 성공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2024년 제1차 정책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참석했으며,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와 강창모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ESG운용부문 대표가 발제를 맡았다. 패널토론에는 고상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실장, 이수철 NH투자증권 운용사업부 총괄대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행사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비대면으로 환영사를 전했다. 김 부위원장은 “국내외 많은 투자자들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추진 상황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며 “기업 밸류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골든타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자본시장, 투자자, 기업이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장에 참석한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분위기도 있다”며 “단기간 내 가시적인 성과에 치중하기 보다는 기업의 자율을 바탕으로 긴 호흡을 가지고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5월 중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기업 밸류업 통합 홈페이지를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3분기 중에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을 마무리해 연말까지 연계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상장하기로 했다. 현재 검토 중인 세정 지원 방안도 조속히 발표할 방침이다. 

한국증권학회가 23일 서울 여의도 파크원NH금융타워에서 ‘기업 밸류업 성공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한 정책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진=백지현 기자 jihyun100@

“이사회에 밸류업 성패 달렸다”

밸류업 프로그램 성패를 좌우할 핵심 과제로 이사회와 지배구조 개편이 언급됐다. 

이날 기조발제를 맡은 이관휘 서울대 교수는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은 미흡한 주주환원과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10년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8.0배인데 이는 선진국 평균(11.6배), 신흥국 평균(11.1배)와 비교해 저조하다. 10년 평균 배당성향도 26.0%으로, 선진국 평균(49.5%)을 밑도는 것은 물론 신흥국 평균(39.5%) 보다 낮다.

또 다른 코리아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기업지배구조와 회계 불투명성, 낮은 기관투자자 비중을 꼽았다. 

이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수익성과 성장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이사회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사회가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적극적으로 주주와 소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일본은 이사회가 주주들에게 충실하도록 기반을 다진 후 밸류업을 시행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밸류업 성패는 이사회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밝혔다.  

주제 발표를 맡은 강창모 한양대 교수는 지배주주의 과도한 지배권을 지적하며, 이와 관련해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가 하나의 방안이다. 

강 교수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 대한 경영진과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해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일반주주들이 감사위원에 대한 해임이나 선출 권한을 강화해 일반주주의 영향력을 이사회 내에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주주대표소송, 다중대표소송을 걸 수 있는 지분율 기준을 완화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행동주의 펀드와 연기금의 주주관여활동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권고적 주주제안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강 교수는 “(행동주의 펀드와 연기금의 주주관여활동은) 사전에 경영진과의 문제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며 “권고적 주주제안을 정관에 규정하는 것을 넘어 제도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이나 정관에서 주총 결의사항으로 정한 안건이 아니더라도, 일정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이사회에 의사를 제시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기 수익률을 타깃한 과도한 요구에 대해선 연기금이 명확히 반대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견제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행동주의 펀드에서도 다양한 제언이 쏟아졌다. 주제 발표를 맡은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부사장은 기업의 내부거래에 대한 공시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사장은 “현행 상법상 특수관계자와의 내부거래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지만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내부거래가 존재하며, 사실상 처벌이 쉽지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회사에 피해를 끼쳤는지 소수주주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부당한 내부거래를 조장하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패널 토론에 참석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주주와 경영진의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주주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을 해야한다. 대신 경영판단의 범위를 넓게 봐 형사적으로 처벌받을 위험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밖에도 주주집단소송 활성화, 디스커버리 제도(소송 당사자간 증거를 미리 교환하는 절차)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권고했다.당국 “상법개정 추가 검토 필요”

학계와 행동주의펀드의 제도 개선 요구가 쏟아지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상법 개정 등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패널토론에 참석한 고상범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기업 입장에선 가이드라인 한 줄, 한 줄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회성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여러 의견을 종합해 실천 가능한 가이드라인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 기업의 특성에 맞게 단계별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기업가치제고 계획에 대한) 공시를 시작하면 시장의 작용으로 점차 보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고 과장은 “이사의 충실 의무 부분에 대해선 법무부가 명확하게 발표하진 않았다”면서도 “그 외에 이사의 책임강화, 전자주총 도입은 개정안이 발의돼서 대기 중인 상태”이라고 말했다. 

거래소가 구성한 ‘기업 밸류업 자문단’에 참여 중인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한다”면서도 “상법을 정하면 여러가지가 얽혀있어 바꿔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이사회가 정관에 스스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고려한다는 내용을 넣을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패널토론 후 객석에서는 ‘우수 밸류업 기업에 주기적 감사인 지정을 면제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금융위는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인센티브로 감사인 주기적 지정을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오히려 기업들의 회계투명성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고상범 금융위 과장은 “주기적 지정 감사제 면제에 관해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감사 관련 우수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처럼 회계 투명성이 낮은 기업에 감사를 면제하는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세부방안을 짜고 있는 과정이며, 우려사항을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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