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이 아파 일상생활에 지장이 큰 데도 병원에 가면 이상이 없다는 얘길 듣는 경우가 적지 않다. 뚜렷한 이유 없이 통증·피로감·소화불량·어지럼증 등 신체적인 증상이 이어지는 ‘신체증상장애’가 대표적이다. 이런 신체증상장애가 환자의 기분에 영향을 받고 불안, 분노의 감정이 통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혜연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신체증상장애 환자 74명과 건강한 대조군 45명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연관성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신체증상장애는 신체 감각이나 자극 감정 스트레스를 처리하고 조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Default Mode Network)’의 기능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MN은 멍한 상태나 명상에 빠졌을 때 활발해지는 뇌 영역이다.
연구팀은 연구 대상을 두 그룹으로 나눠 휴식 상태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혈액검사, 임상심리학적 검사, 혈액 내 신경면역표지자, 임상증상점수(신체증상·우울·불안·분노·감정표현 장애)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신체증상장애 환자는 대조군에 비해 심각한 신체증상과 기분증상(우울·불안·분노)을 보였다. 일부 DMN의 연결성이 저하된 것도 확인됐다. 특히 불안·분노의 감정이 신체증상과 DMN의 기능적 연결성 관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줬다. 불안하거나 화가 날 때 복통, 어지럼증 등의 통증을 더 심하게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환자의 기분이 통증 등 감각을 인식하고 처리하는 DMN 기능을 떨어뜨리면 감각을 왜곡되게 처리하고, 그로 인해 신체증상을 증폭시키거나 과반응하게 된다고 해석했다. 예를 들어 분노하면 위액 분비, 내장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 기능적 위장장애나 복통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신체증상 기전을 다양한 기분증상에 초점 맞춰 뇌 기능적 연결성과 신경면역지표 등 다차원적 요인으로 탐색한 최초의 연구다. 기분이 뇌 기능에 매개적 역할을 해 신체증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박 교수는 “불안이나 분노 등 기분증상이 동반된 신체증상장애 환자에겐 기분증상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신체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DMN이 신체증상장애에 주요한 허브임을 확인한 만큼 향후 인지행동치료나 신경자극치료 등을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지원 받아 진행됐으며 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뇌, 행동 면역(Brain, Behavior and Immunity)’에 실렸다.
|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