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1일 2023년 결산 결과가 나왔다. 언론에 따르면 국가 채무는 1127조 원으로 역대 최대라고 한다. GDP 대비 50%를 처음으로 돌파했다고 한다.
그런데 2022년 결산을 다룬 언론보도를 보자. 2022년 결산은 2023년 4월4일(4월 첫 화요일) 발표했다. 당시 기사는 국가부채가 2326조 원으로 역대 최대라고 한다. 2022년 국가부채가 2300조 원을 훌쩍 넘었는데 2023년 국가채무 1127조 원은 무엇일까?
2022년 4월 첫 화요일에 발표된 2021년 결산 보도를 보면, 국가부채는 2200조 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2021년 4월 첫 화요일 발표된 2020년 결산 보도에 따른 국가부채는 2000조 원에 육박한다며 GDP보다 더 크다고 한다.
정리해 보자. 2020년, 2021년, 2022년 결산 당시 언론에 따른 국가부채는 각각 2000조 원, 2200조 원, 2300조 원이었다. 그런데 2023년 국가채무는 갑자기 1127조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2000조 원이 넘는 국가부채를 언급한 과거 기사는 모두 오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황당한 오보는 국가 결산보고서가 나올때마다 예외없이 반복되었다. 국가부채 2000조 원이라는 오보가 쏟아질때마다 기획재정부의 반박 보도자료와 미디어오늘의 반박 기사 등이 나왔지만 이러한 잘못된 오보는 매년 반복되었다.
[관련기사 : 국가부채 2326조 원, 오보입니다 ]
당시 언론은 1000조 원 정도 되는 것은 ‘국가채무’고 2000조 원 정도 되는 건 ‘국가부채’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러나 이도 사실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우리나라 국가부채(D2)는 약 1200조 원이다. 국가부채(D2)는 우리나라 중앙정부+지방정부+기금까지 포함한 정부(general government) 부채 규모를 모두 포괄하고, 국제 비교가 가능하며, 경제적 실질을 반영하는 명실상부한 국가부채다. 간혹 공기업 부채까지 포괄한 공공부문 부채(D3)도 거론되기는 한다. 이는 공공부문의 건전성을 파악하는 데는 유용한 지표이긴 하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은 아니다.
과거 언론에서 국가부채라고 잘못 언급된 2000조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은 ‘국가채무’도 ‘국가부채’도 아닌 ‘재무제표상 부채’라고 표현해야 한다. 재무제표상 부채는 국제적 비교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건전성을 파악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지표다. 재무제표상 부채가 재정건전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안 되는 이유는 재무제표상 부채에는 공무원연금 충당부채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연금에 내는 기여금이 모두 재무제표상 부채에 포함된다. 즉, 은행이 열심히 영업해서 예금을 유치할수록 재무제표상으로는 ‘예수부채’가 쌓이듯이 공무원이 기여금을 많이 국가에 낼 수록 재무제표상으로는 ‘충당부채’가 늘어나는 구조다.
과거 매년 반복되었던 잘못된 언론의 관행이 올해는 대부분 사라진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로 환영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올해 이런 잘못된 관행이 바뀌었을까?
이를 정파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정파성을 띤 언론이 지난정부 때는 ‘재무제표상 부채’를 왜곡해서 국가부채가 2000조 원이 넘는다고 강조하다가 정부가 바뀌자 이제는 국가채무가 1100조 원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정파적인 기사를 쓰는 일은 드물다. 그냥 연합뉴스 베끼기라고 생각한다. 매년 연합뉴스는 결산 자료가 나오자마자 기사를 송고한다. 다른 매체들은 연합뉴스 기사를 참고해서 기사를 쓴다.
2021년 연합뉴스가 “국가부채 1985조 GDP 첫추월, 나라살림 최대 적자”라고 기사를 송고하면, 다른 매체들은 “국가부채 1985조 GDP 넘어섰다 나라살림 역대 최대” 라고 기사를 쓴다.
2022년 연합뉴스가 “작년 국가부채 2326조 文정부 5년간 763조 원”이라고 기사를 송고하면, 다른 매체들은 “작년 국가부채 2326조 文정부 5년간 763조 폭증”이라고 기사를 쓴다. 재미있는 것은 연합뉴스가 ‘국가부채’라고 쓰면 다른 매체도 그냥 ‘국가부채’가 되고 연합뉴스가 ‘작년’ 국가부채라고 쓰면 다른 매체도 ‘작년’ 국가부채라고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들이 정파적인 시각으로 지난 정부 때는 나라빚 규모를 과장하고자 2000조 원이 넘는 재무제표상 부채를 쓰다가 이번 정부에서는 원칙대로 국가채무 규모 1100조 원을 쓴다고 비판하면 많은 언론들은 억울할 수 있다. 그냥 연합뉴스를 따라 썼을 뿐이다.
물론 모든 언론이 연합뉴스를 그냥 따라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도 재무제표상 부채인 2439조 원을 아직도 그냥 국가부채라고 표현해서 쓴 언론도 있다.
연합뉴스를 따라쓰지 않는다는 의지는 좋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439조 원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국가부채가 아니라 재무제표상 부채액에 불과하다. 데일리안은 2493조라고 표기했는데 이는 2439조의 오기로 보인다.
별도로 재미있는 지점도 있다.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모두 국무회의가 열리는 4월 첫 화요일 전년도 결산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올해만 유독 4월 첫 화요일이 아닌 둘째주 목요일인 11일 통과되었다. 총선이 4월10일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참 공교로운 일이다.
올해 기사에서도 아직 고쳐지지 않은 표현이 있다. 바로 국가부채가 ‘역대 최대’, ‘사상 처음’으로 얼마가 되었다는 표현이다. 시간이 지나 물가가 오르고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국가 자산과 부채는 매년 증가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는 마치 올해가 사상 처음으로 2024년이 되었다는 기사만큼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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