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올해 실적 농사의 바로미터인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기업대출이 성장세가 실적 전반을 가늠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이하 홍콩ELS)’ 사태의 자율배상과 전반적인 가계대출 감소로 실적 부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나마 실적 개선세를 견인할 지표로 기업대출 부문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주요 시중은행 모두 지난 1분기 유의미한 기업대출 성장세를 거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기업대출을 포함한 기업금융 전반의 경쟁력 강화 노력도 지속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다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대기업 위주의 대출 공급이 확대됐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유동성 공급에 어려움을 겪은 중소기업 대출은 상대적으로 증가 폭이 작다는 지적 속에 향후 중기대출 공급 확대를 위한 은행권 내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1분기 기업대출은 ‘고공비행’
18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3월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781조1500억원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767조3140억원) 대비 약 17조8360억원(2.3%) 가량 늘어난 수치다.
각 은행별로 살펴보면 가장 많은 기업대출 잔액을 기록한 곳은 지난해 KB금융의 리딩금융 사수를 이끈 KB국민은행이다. KB국민은행의 1분기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176조517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다만 전 분기 대비 대출 증가폭은 1%에 미치지 못한 0.78%(1조3600여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5대 시중은행 중 가장 낮은 전 분기 대비 증가율이다.
KB국민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기업대출 잔액을 보인 곳은 하나은행이다. 최근 몇 년간 기업금융에 영업력을 집중하는 등 새로운 기업금융 명가(名家)로 자리매김한 하나은행은 올해 1분기에도 전 분기 대비 2.87%(4조5350억원) 늘어난 162조4760억원의 기업대출 잔액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신한은행(161조9760억원), 우리은행(146조6820억원), NH농협은행(137조5000억원) 순으로 기업대출 잔액이 컸다.
특히 1분기 기업대출 시장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곳은 신한은행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 전체 기업대출 잔액 기준으로는 KB국민, 하나은행에 이어 3위에 그쳤지만 전분기 대비 성장률은 5대 은행 중 가장 큰 4.07%(6조3354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대기업 대출(10.58%), 중소기업 대출(2.78%) 모두 5대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같은 대출 증가세에 대해 “지난 1분기 한은이 공급한 ‘중소기업 한시 특별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한 것이 중기대출 잔액 확대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한은이 개인사업자‧중소기업 대상으로 공급하는 연 2%대 저금리 대출로, 은행은 해당 조건으로 한은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유동성을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우리은행도 신한은행에 비해서는 다소 낮지만 5대 은행 중 눈에 띄는 기업금융 성장세를 보여줬다. 지난해 조병규 행장 취임 이후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선언한 이후 공격적인 대기업‧중소기업 대출 확대 전략을 펼친 것이 유효한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실제로 우리은행의 1분기 기업대출 잔액은 전분기 대비 2.9%(4조1370억원) 가량 증가했다. 특히 대기업 대출 부문의 성장세가 눈에 띄는데, 우리은행의 1분기 말 기준 대기업대출 잔액은 27조5970여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0% 이상 급증했다.
수익감소 우려에 믿을 건 ‘기업대출’ 뿐
이처럼 주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기업대출 확대에 영업력을 집중한 데는, 사실상 기업대출이 실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익지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전반적인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계대출 공급을 억제하는 정책 기류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3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합계는 693조5680억원을 기록, 한 달 새 2조2240억원 가량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신생아특례대출, 원스톱 대환대출 등 가계대출 심리를 자극하는 정책금융 상품의 공급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가계대출 감소세가 이어졌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 포함) 잔액은 536조6470억원으로 전월 대비 4500여억원 가량 줄었고,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도 한 달 새 1.2조원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 채권 시장의 흐름에도 은행발 기업대출, 특히 대기업 대출의 증가세가 꺾이지 않았다는 점 또한 주목된다. 미국 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투자심리가 활성화되면서 회사채 발행량이 늘어나는 가운데, 기업대출도 덩달아 증가하는 건 다소 이례적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3월 말까지 공급된 회사채 발행량은 38조8730억원 가량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회사채 연간 발행 규모가 89조3850여억원 수준이었던걸 감안하면, 지난해 전체 발행량의 약 43.5%가 연초 3개월 만에 공급된 셈이다.
현재 흐름을 고려하면 올해 연간 회사채 발행량은 155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다만, 회사채 발행 증가와는 별개로 은행들이 우량 대출 확대를 위한 대기업 대출 영업에 집중하는 데다 중소기업 마중물 공급도 지속할 방침이어서 기업 대출에 회사채 발행이 미칠 영향은 과거보다는 다소 미미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 물량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등급이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며 “은행권 또한 가계대출 감소세를 상쇄하기 위한 기업대출 확대가 필요한 만큼 공격적인 대출영업 기류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출혈경쟁 우려는 ‘지속’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기업대출 확대 전략이 역마진 등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한다. 이미 상당수 기업이 주거래은행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대출 경쟁이 사실상 상대방의 파이를 뺏어오는 ‘제로섬 게임’에 수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은행업계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의 경우, 영업점을 중심으로 현재 연 5%대 초·중반대로 형성된 기업대출 금리(중소기업 기준)보다 대폭 낮은 초저금리로 대출을 공급하는 일종의 ‘출혈경쟁’ 기류도 포착된다.
조달 비용보다 낮은 저금리로 대출을 공급할 경우, 노마진 나아가 역마진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러한 우려를 감수하면서까지 대출 공급을 늘릴 정도로 기업금융 시장 내 경쟁이 과열 양상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업계에서는 이러한 출혈경쟁 양상이 지속할 경우, 수익 개선을 위해 집중하고 있는 기업대출이 오히려 수익성 나아가 건전성 악화라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신규 기업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타 행보다 조금이라도 낮은 금리를 지원하는 건 영업전략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서도 “출혈경쟁에 따른 역마진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건전성 관리도 병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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