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이 기대와 다르게 고착화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사그라들고 있는 가운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이같은 현상에 기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라스트 마일(최종 구간) 과정에서 파월 의장이 섣부르게 금리인하를 시사한 것이 물가 반등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행사에서 “최근 지표는 확실히 우리에게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했다”며 “오히려 이런 확신을 얻는데까지 예상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또 “가격 압박이 지속되면 연준은 금리를 필요한 만큼 길게 유지시킬 수 있다”며 “강한 노동시장과 인플레이션의 진척을 감안하면 제한적인 통화정책을 추가로 허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 둔화에 진전은커녕 물가가 오히려 반등하자 파월 의장이 다시 매파적으로 돌변한 것이다.
실제 1월, 2월은 물론 3월에도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다. 특히 3월 CPI는 전년 동기대비 3.5% 오른 것으로 나오면서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미국 물가가 반등세를 보이는 배경엔 CPI 가중치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비가 가장 끈적한 항목 중 하나로 꼽히는데다 지난달엔 에너지, 서비스 항목도 급등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주거비와 에너지 비용은 전년대비 각각 5.7%, 2.1% 올랐고 차량 정비, 자동차 보험 등을 포함한 교통 관련 서비스는 같은 기간 10.7% 급등했다.
일각에서는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너무 일찍 시사했던 점을 인플레이션 반등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금융시장에 낙관론을 키워 경제활동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앞서 파월 의장은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기자회견 당시 금리를 언제 인하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언급하면서 피벗(통화정책 전환) 신호를 줬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아나 웡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파월 의장의 이러한 발언은 기준금리를 0.14%포인트 내리는 효과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기준금리가 인하되리라는 전망에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 뛰어들자 S&P500 지수는 올해만 신고가를 22차례 경신했다.
그 결과 올해 미국 주식과 채권의 가치는 지난달 고점까지 7.5조달러 늘어났는데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이와 관련, 샌탠더 US 캐피털 마켓의 스티븐 스탠리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들(연준)은 인플레이션 그림을 잘못 이해했다”며 “그들이 저지른 실수는 작년 하반기에 보였던 강력한 성장과 양호한 인플레이션에 매료됐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연준이 앞으로 금리를 내리기 더 어려워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웡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2월 파월의 발언은 올해 미 CPI 상승률을 0.5%포인트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디스인플레이션이 정체됐을 가능성에 파월이 진입해 금리인하를 위한 기준이 더 높아질 것”이라며 “앞으로 실업률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올해 금리인하가 아예 없을 리스크도 커졌다”고 내다봤다.
미 경제매체 CNBC도 17일(현지시간) 월가에서도 연준이 올해 금리를 아예 내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무디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 목표치에 부합하는 인플레이션 지표가 2회 또는 3회 연속 나와야 할 것으로 본다”며 “이것이 연준의 새로운 조건이라면 가장 이른 금리인하 시기는 9월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연준이 빠르면 내년 3월까지 인하하지 않을 리스크가 실제로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고 CNBC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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