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 딜(deal)이 씨가 말랐다.”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고금리 장기화가 현실화하자 사모펀드(PEF)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저금리 차입매수(LBO)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등 M&A 시장 진입이 위축돼서다. LBO란 인수대상 기업의 자산 등을 담보로 금융사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자금조달로 딜을 추진하는 PEF 운용사의 주요 자금줄이지만, 고금리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이들이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조(兆) 단위 대형 M&A 딜은 한 건도 없었다. 6조 원대 몸값이 예상됐던 하림그룹의 HMM 인수가 2월 무산된 이후 역대급 딜 가뭄 현상을 겪은 것이다. 오리온그룹의 레고켐바이오 인수 건이 5000억 원대로 그나마 1분기 대형 거래에 속했다. 업계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위축되고,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경제환경이 지속되면서 몸을 사리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한다.
다만 업계에서는 드라이파우더(미소진 자금)가 쌓여있어 조만간 대형 M&A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초호황을 누리며 회수한 자금으로 펀드를 역대급으로 많이 조성했다”며 “그때 만든 펀드 존속 기간이 국내는 평균 6~8년 정도라 3년 정도 투자한 현재 시점부터 회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실제 드라이파우더가 역대급으로 많은 셈”이라며 “출자자(LP)도 이제는 펀드에 투자한 돈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 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닥을 찍은 M&A 시장에서는 이미 대형 딜을 위한 ‘물밑 작업’이 한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응문 율촌 변호사는 “4월 총선이 있어서 기업들도 이를 지켜보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이제는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라 빠르면 2분기, 늦어도 하반기에는 큰 매물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고금리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고금리 문제가 비단 1분기에 한정한 이슈는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 차입에 과하게 의존해 딜을 진행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PEF 운용사로 유입되는 기관 자금은 증가세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기관전용 PEF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신설된 PEF는 총 104개다. 출자자(LP)로부터 모집한 자금은 14조2982억 원에 달한다. 전년 동기 모집한 자금보다 11.4%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고금리 시기 신규 자금조달 규모가 커진 만큼 외부 충격에 대한 리스크가 커졌다는게 업계 우려다.
한편 국내 대기업들은 수년간 전무했던 대형 M&A에 뛰어들 준비에 나서는 분위기다.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8년간 M&A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삼성전자는 최근 인수에 적합한 해외 기업을 찾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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