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영수회담으로 뜨겁습니다. 4·10 총선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쇄신 의지를 드러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과의 만남에 거듭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22대 국회에서 원내 3당이 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지난 14일 “언제 어떤 형식이건 윤 대통령을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며 영수회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회담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합니다. 대통령실이 연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지난 15일 “일단 계획이 없다”며 “지금은 조직을 추스르고 정비할 때라 마지막에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정 쇄신 의지를 밝혔지만 영수회담에는 선을 긋는 겁니다. 이 대표가 당 대표에 취임한 이후 벌써 8차례 영수회담을 제의했지만, 대통령실은 한 번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왜 영수회담을 거절하는 걸까요? 조 대표는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국정 파트너’가 아니라 ‘피의자’로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지난 14일 영수회담을 요청하면서 “윤 대통령은 총선 전 이재명 대표를 구속시킨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만나지 않았다”며 “검찰을 이용해 정적을 때려잡으면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은 무난하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야당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상병 특검법’ 등으로 정국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회담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회담을 열면 무거운 현안에 답하고, 야당과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데 여당에 불리한 안건들이 많아 자칫하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이 느끼는 부담이 ‘엄살’만은 아닙니다. 역대 영수회담을 살펴보면, 회담이 열리기 전과 후로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꽤나 고생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8년 9월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시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해당 회담은 청와대 측에서 먼저 제안해 이뤄졌습니다. 세계 금융 위기에 따른 ‘초당적 경제협력’이 주제였습니다. 2시간 동안의 독대 이후 국내 경제를 살리기 위한 초당적 정책이 합의됐습니다.
그러나 정 대표는 회담 이후 당내 ‘리더십 논란’을 맞아야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노선에 대해 민주당의 입장을 강하게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정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추미애 의원은 영수회담 결과를 두고 “여야 영수회담에서는 6·15나 10·4 선언에 대한 평가가 빠져 있었다”면서 “햇볕정책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깎아내려진 것에 왜 침묵하는지 민주당 지지세력은 궁금했을 것”이라고 일침했습니다. 여야가 정체성을 걸고 맞부딪히는 종합부동산세 문제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철학적 차이를 확인했다’는 멘트로 갈음한 것도 비판받았습니다.
회담을 열었다가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에는 실익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대표적입니다. 민생안정과 상생정치 등을 주제로 성사된 회담은 ‘대연정’이 큰 의제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구도, 선거구제 개편, 연정을 위한 정치협상 등을 제안했지만, 박 대표는 회담에서 “말씀을 거둬달라”며 딱 잘라 답했습니다. 결국 2시간 30분 가량의 회담 동안 두 사람은 의견 차만 확인했고, 사실상 빈손 회담으로 끝났습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당내 그룹의 강한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렇듯 회담 결과에 따라 엄청난 후폭풍이 수반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당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회담에 임하거나, 그간의 기조와 다른 합의가 나오면 오히려 정국이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수회담이 빛을 발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2015년 박 대통령과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3자 회동 때입니다.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됐던 100여 분의 회동에서 세 사람은 주요 정치 현안이었던 연금개혁과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저소득층 연말정산 불이익 해소 등에 대한 공통된 의견을 모아 ‘의외의 성과’를 만들었습니다. 대통령과 막강한 힘을 가진 야당 대표의 만남인 만큼, 성공한다면 막힌 정국을 타개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대승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의견 차이만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어렵게 만나놓고 형식적으로 끝나는 ‘정치적 쇼’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영수회담은 과거의 유산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영수회담은 과거 제1야당 대표와 대통령이 직접 둘이 만나 정국을 풀어내는, 그 시대의 회담을 일컫는 말”이라며 “지금은 초대 대상도 여러 명이고 과거의 의미를 담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영수회담 자체보다는 회담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정신, ‘타협의 정치문화’를 복원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3김 시대 때는 여야를 떠나 수시로 어울리고 소통하는 ‘정(情)의 문화’가 자리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여야 소통은커녕 같은 당 소속 의원들조차 계파별로 나눠 싸우고 있습니다. 갈등을 조정한다는 정치의 능력을 잃어버린 겁니다.
무조건 영수회담을 거부하는 것보다 다른 만남을 제시하는 것도 국가 지도자의 역할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야당 대표와의 독대가 불편하면 3자, 5자 회동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윤 대통령도 일전에 “여야 지도부까지 논의를 하면, 저 역시도 정당 지도부들과 충분히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3년입니다. 22대 국회에는 민생 법안이 산적해 있습니다. 범야당 대표들은 윤 대통령 임기 기간 발생한 일들에 특검법과 국정조사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거부권과 특검법으로 둘러싸인 정국을 타개할 효과적인 수단은 대화와 타협입니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뚝심’이 ‘고집’이 되지 않으려면 회담에 불응만 하는 것보다 여러 형태의 소통을 야당에 제안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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