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국내 은행업권이 ‘고정금리 딜레마’에 빠졌다.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고정금리 비중을 연내 30% 수준까지 끌어올리라고 주문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여기에 고정금리 비중을 높이기 위해선 변동금리의 금리 수준을 상대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점은 다소 부담스럽다는 눈치다. 최근 긴축완화 기조에 정중동 행보를 보이는 준거 금리를 역행하고 가산금리 등 인위적인 금리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밖에 고정금리의 지표금리인 은행채 금리가 오히려 점진적이나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은행권의 고민을 키우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차주들이 연초부터 변동금리 선택 비중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고정금리 확대를 둘러싼 은행권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당국, “고정형 주담대 비중 30%로 늘려야”
12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지침에 따라 올해 말까지 현재 취급 중인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중 고정금리 비중을 30%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당국 권고에 영향을 받는 주담대는 은행이 자체 공급한 주담대 중 약정 만기 5년 이상 순수고정 혹은 주기형(금리변동 주기 5년 이상) 주담대다.
다만 금리가 다소 낮게 책정된 정책금융상품 및 혼합형(변동+고정) 주담대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여기에 향후 금리 여건등을 고려해 은행권 전체 고정금리 목표 비율은 현재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간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업권 전반의 고정금리 비중을 30%대 중후반까지 올리겠다는 목표치를 제시한 바는 있지만, 주요 은행의 개별 상품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목표 비중 달성을 권고한 건 이례적이다. 사실상 지난 2022년과 지난해까지 이어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연초 대비 7%) 설정 이후 또 한번 등장한 당국의 압박이라는 점에서 대출 금리 발 관치(官治)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금융당국은 이같은 고정금리 비중 확대 기조가 오래전부터 이어진 측면이 있다며 관치 논란에 미리 선을 긋는 모습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난 2014년부터 꾸준히 고정금리 및 비거치식 분할상환 주담대 취급 비중을 늘릴 것을 은행권에 권고해 왔다.
그 결과 실제 고정형 주담대 비중은 지난 10년 사이 20%p 가량 늘어나며 절반 이상(51%)의 비중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데일리임팩트가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국내 은행권 내 주담대 중 고정금리 비중(신규 취급액 기준)은 72.3% 수준으로 10년 전인 지난 2013년 고정금리 비중(38.5%) 대비 두 배 이상 확대했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가계대출의 질적 관리 및 이자 부담 경감을 위해 고정금리 확대를 주문한 결과 지난 2022년(54.8%) 대비로는 1년 새 19.5%p나 급증하기도 했다.
잔액 기준으로도 국내 은행권 주담대 내 고정형 비중은 2013년 21.3%에서 지난해 41.4%로 역시 두 배 가까이 확대됐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상이 지속되고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낮은 금리 역전 현상이 고착화하면서 당장의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고정금리 수요가 늘어난 것은 맞다”며 “현장에서도 당국의 기조에 맞춰 고정금리 상품 선택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국 목표에 은행권 “달성 쉽지 않을수도”
다만, 은행업계에서는 이 같은 금융당국의 고정금리 확대 기조가 기존 조치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사실상 달성이 어려운 목표치를 당국이 제시한 것이 또 하나의 ‘관치행정’이 아니냐는 지적도 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번 금융당국의 고정금리 비중 확대가 신규 취급액이 아닌 ‘잔액 기준’이라는 점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규 취급은 매월 신규로 공급하는 대출이 기준이다. 표면적으로 신규 취급의 확대는 현장에서 신규 대출자를 대상으로 고정금리를 유도하면 되지만, 잔액 기준으로 비중을 늘리기 위해서는 공급 건수뿐 아니라 기존에 변동형으로 공급된 대출의 고정금리 전환도 병행해야 한다.
산술적으로 현재 420조원에 달하는 은행 주담대에서 순수고정, 주기형 금리 비중을 12%p 가량 늘리려면 약 50조원 가량이 해당 금리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또 기존 대출이 아닌 신규 공급을 통해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선 그보다 더 많은 대출 공급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은행권 내 추산이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이 같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연내 달성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년 새 고정금리 비중이 가장 크게 확대된 건 지난 2013년 대비 2014년 고정금리 비중 증가폭인 13.4%p(21.3%→34.7%)였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금융당국의 꾸준한 고정금리 확대 압박에도 지난 2022년 대비 2023년 고정금리 비중 증가폭은 6.5%p(34.9%→41.4%) 수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신규 취급액 기존 고정금리 증가폭이 17.5%p(54.8%→72.3%) 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잔액 비중의 12%p 증가를 위해선 신규 취급 비중이 30%p 이상 확대가 필요한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최근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정책모기지 확대의 여파로 은행권 순수고정 및 주기형 주담대 수요가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기존 변동금리 상품의 고정금리 전환을 유도해야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차주들의 선택의 영역이라 은행권에서도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위적인 금리 조정에는 여전히 ‘반감’
실제로 최근 대출 차주들은 당국의 고정금리 확대 기조와는 반대로 변동금리에 대한 선택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최근 1년 새 이어진 고금리 기조로 고정금리 비중이 대폭 늘어난 건 맞지만, 올해 들어 미국 연준의 긴축 기대감 이에 따른 국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더해지면서 실제로 변동금리 수요가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65.9% 수준까지 치솟았던 은행권 내 고정금리 비중은 지난 2월 기준 65.6%로 0.3%p 가량 줄었다. 1%p에 미치지 못하는 소폭의 인하이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10%p에 육박(9.2%p)할 정도로 가팔랐던 상승세가 꺾였다는 점에서 향후 이같은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같은 예측을 뒷받침하는 지표는 바로 변동금리의 준거금리로 활용되는 코픽스(COFIX)의 흐름이다. 통상적으로 고정금리는 은행채(AAA‧5년물 기준) 금리, 변동금리는 코픽스의 흐름을 추종한다. 지난해 11월 4% 수준까지 치솟으며 절정에 달했던 코픽스 금리는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완연한 하락세로 전환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기준 3.84% 수준을 기록한 코픽스(신규취급액 기준)는 지난 1월(3.66%)에 이어 2월(3.62%)에도 전월 대비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정금리 비중을 늘리고 변동금리 비중을 줄이기 위해선 상대적으로 변동금리 대비 고정금리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변동금리 준거인 코픽스가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고정금리의 지표인 은행채(AAA‧5년물) 금리는 오히려 이번 달에만 0.03%p 가량 오르며 고정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사실상 가산금리 조정 등을 포함해 또 한번의 인위적 금리 조정이 불가피한 셈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가계대출의 질적 개선이라는 큰 틀에서의 정책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당국의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라며 “당국은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이번 권고를 또 하나의 관치로 해석하는 의견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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