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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둔 이튿날 국내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윤석열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목표로 추진하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을 웃돌며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1.09%),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0.95%), 나스닥지수(-0.84%)가 일제히 하락한 영향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총선 결과가 국내 증시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전문가들은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정치 지형보다는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가 국내 증시에 영향을 미칠 가장 큰 변수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특히 삼성전자(005930) 등 반도체 업종을 필두로 금융·자동차 등 주요 밸류업 수혜주가 추가 상승할 여력이 있다고 예상했다.
서울경제신문이 11일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4명을 대상으로 증시 전망을 인터뷰한 결과 응답자들은 총선 결과가 국내 증시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 변수는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 당국이 밸류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고 야당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증시 부양이라는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어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001200) 리서치센터장은 “총선 결과가 21대 국회와 크게 바뀌지 않아 증시에 변수가 되기 어렵다”며 “국내 증시가 그간 밸류업 덕분에 버텨온 만큼 야당에서도 압승했다는 이유로 정책을 중단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건전 재정 기조를 바꾸고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에 나설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 정부와 달리 야권은 경기 방어를 위해 줄곧 확장 재정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006800) 리서치센터장은 “앞으로 정부가 확장 재정으로 정책 기조를 얼마나 바꾸고 구체화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봤다. 실제 이날 외국인투자가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1조 원 넘게 순매수하며 재정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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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미국 경기가 국내 증시에 미칠 파급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에서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짐에 따라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국내 수입 물가 급등 등 국내 통화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이 불가피한 탓이다. 실제 이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364.1원까지 올랐고 국고채 3년물 금리도 3.466%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 국채 발행 물량 소화, 경기에 대한 기대감 등이 반영된 미국 10년물 금리를 주목해야 한다”며 “향후 금리가 4% 중·후반을 돌파하면 국내 증시는 중간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 센터장도 “미 금융시장이 상당히 불확실한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올해 미국 증시가 성장주 중심으로 크게 올랐는데 상승세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섹터로는 반도체·바이오·방산 등 실적이 뒷받침되는 업종이 지목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 등 반도체 대장주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랠리에 올라탄 와중에 실적 개선까지 예상돼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이 센터장은 “글로벌 주요 반도체 업체 중에서 삼성전자보다 주가가 좋지 않은 회사를 찾기 어렵다”며 “특히 삼성전자는 그간 약했던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성과가 기대돼 랠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센터장은 “방산은 대외 지정학적 이슈로 국내 실정과 무관하게 좋은 주가 흐름을 보일 것”이라 짚었다.
밸류업 수혜주로 꼽힌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에도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종형 키움증권(039490) 리서치센터장은 “은행·자동차·증권 등 주요 저PBR 업종의 주가는 3월 중 고점 대비 10~20% 이상 급락한 만큼 여전히 주가가 매력적”이라고전망했다. 김 본부장은 “향후 반도체 기업의 실적 발표에서 가격 인상에 대한 언급 여부가 주가의 추가 상승을 결정할 것”이라며 “2분기까지는 반도체 업종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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