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치솟자 연고점을 돌파한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신규 일자리가 3월 들어 예상 수준을 넘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뜨거운 미국의 고용시장에 국채금리는 더욱 치솟았으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연내 금리인하에 신중한 자세를 취할 것이란 예상이 힘을 얻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전날보다 5.7원 오른 1352.8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1일(1,357.3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틀 연속 하락(원화 가치는 상승)했던 환율은 전날보다 4.9원 오른 1352.0원으로 개장한 뒤 1350원대에서 횡보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위험 선호 심리 위축은 환율 상승 요인으로 꼽혔다. 이란이 시리아의 이란 영사관 폭격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강한 보복을 예고하면서다. 이날 유가는 2023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5월 인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86달러대를 웃돌았고, 6월 인도 브렌 트유는 배럴당 90달러를 넘었다.
미국이 에너지 순수출국이 되면서 유가가 상승할 경우 미국의 무역수지가 개선되면서 강달러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가는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레벨을 높이고 있다. 올해 WTI 가격은 20% 가까이 올랐고, 브렌트유도 16% 정도 상승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의 감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동유럽과 중동 지역 지정학적 긴장이 이어지면서 공급 우려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역시 공급을 줄이는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도 환율 상승에 영향을 끼쳤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은행 총재가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 올해 금리 인하가 시작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는 “Fed가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조기 금리 인하 기대를 누르기도 했다.
여전히 뜨거운 미국 고용시장은 강달러를 더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연준의 금리 인하가 시작되지 않을 수 있다는 연준 당국자의 발언을 고용 지표가 뒷받침하면서 금리인하 기대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앞서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견조한 고용시장 확인 △상품가격 속등 △제조업 경기 회복 기대로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면서 강세를 나타낸 바 있다.
이날 발표된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3월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무려 30만3000건 늘었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20만명을 큰 폭으로 웃도는 수치다. 고용보고서를 감안할 때 연준은 금리 인하 시기를 보다 신중하게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평균 수준을 뛰어넘는 고용 증가세는 미국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의 기준금리(5.25~5.50% 범위)를 유지하면서도 노동시장이 여전히 견조한 만큼 금리를 서둘러 인하할 필요성이 작아진 셈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그동안 기준금리 인하에 앞서 인플레이션 둔화세 지속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노동시장 과열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해 강조해왔다.
하인환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원·달러 환율 상승은 달러화 강세에 의한 것”이라면서 “그 기저에는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리스크와 그에 따른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 미국 장기 국채 발행에 대한 수급 우려 등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다음주는 달러화 변동성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면서 “3월 미국 소비자물가와 4월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 등 주요 이벤트가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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