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외교 노력이 건설 분야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삼성E&A와 GS건설이 무려 10조 원에 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가스시설 공사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이다. 고유가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중동 지역 발주도 이어질 가능성이 커져 건설업계에는 해외 수주 청신호가 켜졌다.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삼성E&A와 GS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Aramco)가 발주한 총 72억2000만 달러(약 9조7000억 원) 규모의 가스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이 사업은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에 위치한 ‘주베일 산업단지’ 파딜리(Fadhili) 유전지역 공단 내 가스처리시설을 확장하는 공사로, 사업기간은 45개월이다. 사업은 패키지로 발주됐다. 삼성E&A는 파딜리 가스 증설 프로그램 패키지 1번, 4번 공사, GS건설은 패키지 2번 공사를 맡는다. 각 사 수주 금액은 삼성E&A가 약 60억 달러(약 8조 원), GS건설이 약 12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다.
사업 규모 면에서 이번 실적은 ‘역대급’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발주 사업 가운데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해외건설 수주 사업 전체로 보면 역대 세번째 규모다.
1위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수주한 191억 달러짜리 바라카 원전 사업이고, 2위는 2012년 이라크에서 수주한 77억 달러 규모의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사업이다. 1, 2위 사업 분야 자체가 규모가 큰 도시 단위 또는 원전 사업임을 감안하면, 화공플랜트 건설공사에서 이 정도로 큰 사업을 따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건설업계의 평가다.
특히 이번 수주는 정부가 중동 지역과 산업외교를 벌인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 당시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그간 굳건히 다져온 토대 위에 새로운 인프라 경제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기념식에는 아민 나세르 아람코 CEO도 참석해 자푸라 2단계 가스플랜트 계약에 서명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도 꾸준히 중동지역과 건설 협력관계를 다지고 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2월 취임 후 첫 출장으로 이라크를 방문해 사업수주 지원 활동을 펼쳤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사업 재개를 기념해 방문한 이 일정에서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 의장, 교통부 장관 등을 만나고, 현지 공사에 우리 기업이 참여해줄 것을 요청받는 등 협력 관계를 다지기도 했다.
이번 수주로 올 들어 다소 부진했던 해외건설 실적도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게 됐다. 해외건설통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올해 누적 해외수주액은 21억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8% 감소했다. 하지만 이번 수주로 누적 해외수주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61억1000만 달러)의 2배를 넘는 127억2000만 달러에 달한다. 올해 해외수주 목표는 400억 달러로, 기간만 놓고 보면 1분기 정도 만에 연간 목표치의 약 32%를 달성한 셈이다.
연내 수주 목표 조기 달성에도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중동 지역 정세가 불안해 고유가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일반적으로 소비자물가가 올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만, 해외건설에서는 호재로도 작용한다. 대부분 산유국인 중동 국가는 고유가 상황에서 재정 능력이 건실해져 건설 프로젝트 발주 물량을 늘리는 경향이 있다. 아람코의 경우도 2022년 2분기 수익이 2년 전보다 7배 이상 늘어나자 기존 400억 달러 수준의 설비투자 계획을 500억 달러로 상향 발표한 바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오르면 발주처의 투자 여건을 개선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건설 발주가 늘어나게 된다”며 “최근 몇 년간 고유가 현상이 계속되고 있어 지속적으로 해외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정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MENA(중동ㆍ북아프리카) 지역 산유국들은 고유가 지속으로 재정수지 개선 중에 있으며, 지속적인 발주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며 “국내 건설사들은 수익성이 갖춰진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엔지니어링 인력이 부족한 시점이기에 과거와 달리 저가 수주일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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