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위기에 채무보증 부채도 급증
하나증권 7배·한투증권 3배 넘게 늘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여파로 증권사들의 충당부채가 한 해 동안 4000억 원 넘게 늘며 2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는 부동산 호황기 건설사와 시행사에게 보증을 서며 자금 조달을 도왔는데, 부동산 PF 시장이 침체되면서 그들의 부채를 떠안게 될 공산이 커진 것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최근 부동산 PF 정상화 방침을 발표한 가운데 급한 불은 끄더라도 향후 증권사의 재무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영업하는 증권사 60곳의 지난해 말 기준 충당부채는 2조2346억 원으로 전년 말 대비 26.1%(4624억 원) 증가했다.
충당부채는 미래에 발생할 지출, 손실 대비해 미리 빼둔 금액이다. 시기와 금액은 불확실하지만 지출 가능성이 높은 부채다.
부채가 늘어난 증권사 중 잔액 규모로 보면 KB증권이 같은 기간 55.9% 늘어난 3502억 원으로 가장 컸다. 유안타증권이 1932억 원으로 17.1%, 한국투자증권은 1800억 원으로 201.9% 증가했다. 하나증권은 1556억 원으로 519.7% 급증했고, 메리츠증권은 1372억 원으로 69.9% 불어났다.
이는 충당부채 중에서도 채무보증이 늘어난 영향이다. 채무보증은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때 채권자가 대신 갚겠다고 보증을 서는 걸 의미하는데, 증권사가 다른 회사의 빚을 대신 갚아야할 규모가 커졌단 의미다. 이들 증권사의 지난해 말 채무보증 충당부채는 1조1513억 원으로 1년 새 두 배(109.2%) 넘게 늘었다.
채무보증도 크게 늘어난 곳은 전체 충당부채도 급증한 곳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이 225.4% 불어난 1708억 원으로 가장 컸다. 그다음 하나증권이 1491억 원으로 648.5% 폭증했다. KB증권의 채무보증은 1437억 원, 메리츠증원은 1300억 원으로 각각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채무보증 충당부채가 급증한 것은 부동산 PF 시장 나빠지면서다. 증권사 채무보증은 부동산 PF 관련 비중이 크다. 신용도가 낮은 부동산 시행사들은 PF 대출 채권을 담보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증권사는 이때 보증을 서고 수수료를 받으며 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고금리 장기화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PF 사업 중단 사태도 속출하자 증권사가 시행사 대신 빚을 떠안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부동산 PF 사업장 회복이 더딘 가운데 금융당국이 정상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증권사의 실적, 재무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충당부채는 향후 영업외 비용으로 처리될 수 있는 만큼 재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정상화 과정에서 부실 사업장이 정리되면 충당금을 더 많이 쌓아야해 이중으로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충당금은 받지 못할 채권에 대비해 마련해두는 비상금 성격이지만 순이익을 감소시킨다.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업권에서는 부동산 PF 사업 손실은 물론 홍콩 H 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금 등에 대응하다보니 평소보다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쌓고 충당부채를 계상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시장 자체가 회복되지 못하면 부담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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