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주총회에서는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표 대결 결과를 갈랐다는 평이 나온다. ##한미사이언스##가 당초 주변 권고대로 이 제도를 적용했다면, 승자가 달라졌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집중투표제는 선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가 100주고 후보가 5명이라면, 한 사람이 총 500표를 행사할 수 있어 특정 후보에 이른바 ‘몰표’를 행사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통상적으로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로 쓰인다. 소액주주들이 한명에 몰표를 행사하면 현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사회 의석을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JB금융지주##는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영향으로 행동주의펀드 측에 이사 자리를 내줘야 했다.
집중투표제는 상법상 임의조항이다 보니 기업 정관에 ‘배제’ 조항을 넣으면 시행이 불가능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산규모 1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중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곳은 KT&G, ##SK텔레콤##, ##한국전력## 등 3.5%에 불과했다.
한미사이언스 역시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했다. 표 대결을 펼쳤던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 모녀와 임종윤 전 사장·임종훈 전 한미약품 사장 형제 중 한쪽이 과반 지분을 확보해야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초 모녀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판은 지분 12.15%를 보유한 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형제 측 손을 들면서 바뀌었다. 양측 지분은 각각 42.66%대 40.57%로, 격차가 2%포인트로 줄면서 결과는 소액주주 손에 달리게 됐다.
개표 결과, 임주현 사내이사와 이우현 사내이사 선임안을 비롯한 송영숙 회장 측 추천 이사 6인은 전체 주식의 과반을 득표하지 못해 보통 결의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임주현 사장의 경우 2859만709주(약 48%), 이우현 ##OCI## 회장은 2864만592주(48%)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 임종윤 형제 측 주주제안 이사들은 5인 모두 50%가 넘는 찬성표를 얻었다.
만약 한미사이언스가 집중투표제를 채택했더라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주주가 총 10명이고 각각 1주씩 갖고 있다면 이사선임 안건에 총 20표가 행사될 수 있다. 모녀와 형제를 지지하는 주주가 각각 4명, 소액주주가 2명이라고 가정해 보자. 모녀 측 주주 4명이 임주현 사장과 이우현 회장에게만 표를 몰아줘도 적어도 이들은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사회 최대 정원이 10명이고, 모녀 입장에선 이미 기존 이사회에 우군 4명이 있기에 과반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은 집중투표제가 사모펀드 등 투기자본 세력이 이사회를 장악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해 꺼리고 있다”면서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해 집중투표제 도입 고려는 물론, 소액주주 설득에도 형제 측에 비해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최소 두 명만 선임됐어도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중투표제는 현 경영진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한미그룹 외의 사례를 봐도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행동주의 펀드 FCP로부터 공격을 받던 KT&G도 집중투표제로 오히려 이득을 봤다. 소액 주주였던 FCP는 자신이 추천한 후보를 선임하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제안했고 회사 측이 수락했다. 그러나 지분율 8.4%의 IBK기업은행이 등장하면서 수혜를 입는 쪽이 KT&G로 바뀌게 됐다. 결국 방경만 사장은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사장 자리에 올랐다.
물론 집중투표제는 대체로 소액주주에 유리하다. JB금융 주총에서는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지분율 14.04%)가 제안한 사외이사 후보 2명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얼라인 측은 주총 전 이미 이사회 추천과 무관하게 1명의 사외이사는 선임 가능하다고 점쳤었다. 여기에 소액주주들이 대거 움직이면서 지난해 주총에서 완패한 얼라인이 2명을 선임하게 됐다. 다만 감사위원 등 제도가 적용되지 않은 다른 주주제안은 모두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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