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개가 넘는 상장사가 오는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일제히 개최한다. 상장사들이 주총 집중개최일을 피하면서 외려 이날로 쏠림 현상이 대거 발생했다. 소액주주의 의결권 보장을 위해 실시하는 주총 분산 자율준수 프로그램은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현실적 대안인 전자주주총회는 국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27일 한국예탁결제원 등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코넥스시장에 기업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 2675개사 가운데 851개사가 오는 28일 정기 주총을 개최한다. 법에서 정한 주총 소집 기한(2주) 직전인 지난 14일에만 150개사 넘는 상장사가 주총 계획을 공시하며 쏠림 현상은 더 심해졌다.
당초 주총 집중일로 예상한 26일(266개사)과 29일(721개사)을 훌쩍 뛰어넘는 기업이 28일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통상 가장 많은 주총이 열리는 3월 마지막주 금요일(29일)보다도 많은 주총이 열린다. 상장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정관 변경과 신규 이사 선임 등 주요 안건을 28~29일 이틀만에 모두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소액주주가 개별 회사의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섀도 보팅 제도가 폐지된 이후 의결권 위임 대행업체 속속 등장한데다 전자위임장 등 손쉬운 의결권 행사를 위한 시스템도 갖춰졌지만 활용도는 높지 않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에 들어서야 전자투표 행사율은 간신히 10%를 넘겼다.
경영권 분쟁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으로 표 대결이 예상되는 주총마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5일 있었던 다올투자증권 주주총회는 77.4%의 주주가 위임 및 현장 출석 또는 전자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했다. 2대 주주가 제시한 주주제안 가운데 소액주주에게 유리한 안건에도 대부분 소액주주를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28일 주총을 앞둔 KT&G, JB금융지주 역시 마찬가지다.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일부 대주주를 제외하면 소액주주 호응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영권 분쟁이나 이사 선임 안건 대다수가 대주주 입맛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처럼 상장사의 자율 분산 프로그램이 유명무실하게 돌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주간 표 대결마저 의결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이를 뒷받침할 제도는 도입조차 못한 상황이다. 법무부가 지난해 11월 주주총회를 전자적 방식으로도 개최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완전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법안은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상장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상장사 협단체 뿐만 아니라 예탁결제원까지 빠른 제도 도입을 촉구하며 사전준비에 나서고 있지만, 진척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더라도 상장사들이 주총에서 정관을 개정해야 실제 도입이 가능하다. 예탁결제원은 2026년부터 전자주총이 개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주환원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주주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전자주주총회 도입은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면서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다음 국회에서 최우선으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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