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 핵심 소자가 되는 강유전체를 화학물질 없이 식각할 수 있는 연구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이뤄졌다.
KAIST는 홍승범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제네바 대학교와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강유전체 표면의 비대칭 마멸 현상을 세계 최초로 관찰·규명, 이를 활용해 나노 패터닝 기술을 개발했다고 26일 밝혔다. 마멸이란 물체 표면의 재료가 점진적으로 손실 또는 제거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나노 패터닝 기술은 나노스케일로 소재의 표면에 정밀한 패턴을 생성해 다양한 첨단 기술 분야에서 제품 성능을 높이는 데 사용된다.
차세대 반도체 메모리의 소재로 주목을 받고 있는 강유전체는 차세대 메모리 소자 혹은 작은 물리적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로 활용되는 등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연구팀은 강유전체 소재의 표면 특성에 관한 연구에 집중했다.
이들은 원자간력 현미경(Atomic Force Microscopy)을 활용해 다양한 강유전체의 트라이볼로지(마찰·마모) 현상을 관찰했고, 강유전체의 전기적인 분극 방향에 따라 마찰되거나 마모되는 특성이 다르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분극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트라이볼로지의 원인으로 변전 효과(Flexoelectric effect)에 주목했다. 변전 효과란 물질이 휘어졌을 때 분극이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거시 규모에서 물질을 구부렸을 때 유도되는 분극의 크기가 매우 작아 그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물질이 나노스케일로 미세화될 경우, 매우 큰 변전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많은 연구자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연구진은 강유전체의 트라이볼로지 특성이 나노 단위에서 강한 응력이 가해질 때 발생하는 변전 효과로 인해 강유전체 내부의 분극 방향에 따른 상호작용으로 트라이볼로지 특성이 바뀌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새로운 강유전체 트라이볼로지 현상을 소재의 나노 패터닝에 응용했다.
이러한 패터닝 방식은 기존의 반도체 패터닝 방식과는 다르게 화학 물질과 고비용의 리소그래피 장비가 필요하지 않고, 기존 공정 대비 매우 빠르게 나노 구조를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의 제1 저자인 조성우 KAIST 신소재공학과 졸업생(박사)은 “이번 연구는 세계 최초로 강유전체 비대칭 트라이볼로지를 관찰하고 규명한 데 의의가 있고, 이러한 분극에 민감한 트라이볼로지 비대칭성이 다양한 화학적 구성·결정 구조를 가진 강유전체에서 널리 적용될 수 있어 많은 후속 연구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를 이끈 홍승범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개발된 패터닝 기술은 기존 반도체 공정에서 쓰이는 패터닝 공정과 달리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매우 낮은 비용으로 대면적 나노 구조를 만들 수 있어 산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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