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대통령실이 이전하면서 과거 청와대가 있었던 종로에 이어 ‘신(新)정치 1번지’로 꼽힌다. 높은 부동산 가격 등으로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에 이은 보수 강세 지역이지만 민주당계 국회의원과 구청장을 배출한 적도 있어 보수 우위 ‘스윙 스테이트’로 분류된다.
오는 4월 여야 모두 놓칠 수 없는 핵심 승부처인 용산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와 검찰 선배로서 사석에서 ‘형’으로 불린다는 ‘친윤(윤석열) 핵심’ 권영세 국민의힘 후보와 강태웅 더불어민주당 후보 간 ‘리턴매치’가 확정됐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서는 불과 득표율 0.66%(890표) 차이로 권 후보가 승리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두 후보는 오차 범위 내 접전이 확인된다.
본지 취재진은 24일 오전 용산 이촌역 근처에 있는 충신교회 앞에서 권 후보를 만났다. 그는 교회에 입장하는 유권자들을 향해 허리를 굽혀 명함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권 후보는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4선 현역 의원이다.
권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용산을 도약시키기 위해 모든 경험과 역량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핵심 공약으로는 윤석열 정부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인 ‘철도 지하화’를 제시했다. 그는 “지상철도로 인한 소음과 진동 문제, 지역 간 단절은 국민께 많은 불편과 피해를 초래했다”며 “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기존 철도 건설 사업 체계로는 추진하기 어려워 진행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는 “국토교통부, 코레일, 서울시 등 주요 관계 기관들을 설득했고 여러 의견을 조율해 지난해 11월 철도지하화 특별법을 발의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특별법을 근간으로 120년간 단절된 용산을 하나로 통합시킬 계기가 마련됐다”고 자부했다.
그는 또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성공적 조성도 우선순위”라며 “10년간 제자리걸음이었던 사업을 오세훈 서울시장을 설득해 공약화했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각 부처, 대기업과 협력이 필요한 일을 해내기란 쉽지 않다”며 “여당 중진 의원이 지역구민들로서는 더 믿음직스럽고 든든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권 후보는 “21대 국회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국민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며 “22대 국회에서는 국민이 공감하고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정치, 상생과 공존의 정치를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유권자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권 후보에게 “파이팅”을 외치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주민도 있었지만 “분발해야겠다”며 일침을 가하는 이도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장훈씨(45)는 “권 후보가 국회의원으로서 용산에 한 일은 굉장히 미미하다”며 “대통령실 용산 이전 이후 2년 동안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했다기보다는 대통령실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인들 대부분 국민의힘에 부정적 정서가 강하다”며 “지지 정당을 민주당으로 바꾼 이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80대 남성 A씨는 “죽어도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보면 흠이 많아 보인다. 최근 ‘중국에 셰셰’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이 대표의 민주당보다는 국민의힘 정책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도전에 나선 강태웅 민주당 후보는 ‘정권 심판론’을 내세웠다. 강 후보는 같은 날 오후 효창공원역 4번 출구에서 유세를 펼쳤다. 그는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실정을 심판하는 선거”라며 “용산은 대표적인 스윙보터 지역이다. 중도층 표심을 얻고 진보 진영 결집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강 후보는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역임한 공무원 출신으로 지역 명문 용산중‧고를 졸업했다. 그는 자신을 ‘생활 밀착형’ 정치인이라고 소개하고 “지난 총선 이후 4년 동안 민주당 지역위원장 자리를 지키며 소통했다”며 “주민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고 해법을 제시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총선 공약으로 “용산 발전에 걸림돌인 대통령실을 청와대로 돌려 보내거나 제3의 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며 “용산 국가공원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해 전면 개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강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는 890표, 0.66% 차이로 권 후보에 석패했다. 지금 용산은 윤석열 정권 심판 정서가 강하다”면서 “용산에서 정권 심판 바람을 일으켜 국가와 용산의 미래를 바로 잡겠다”고 자신했다. 이어 “좋은 정치는 보편적 공약을 넓히고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일”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손 잡고 함께 가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효창공원역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민 B씨(35)는 “이제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데 육아 혹은 교육 관련 법안들을 잘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그는 “일 잘하는 현역 의원에게 투표하고 싶은데 지금 국민의힘 후보가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도 “이재명 대표가 좋은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2022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인근에서 만난 시민들 상당수는 국민의힘에 비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인 C씨(45)는 “이태원 참사 당시 피해자와 상인들을 도운 것은 민주당이었다”며 “하지만 투표는 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후보들에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취업준비생 김민철씨(28)는 “이태원 참사 때 안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아서 무조건 민주당에 투표할 것”이라며 “이태원특별법도 민주당이 통과시키려는 것을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막고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대통령도 국민의힘도 한 게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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