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이하 현지시간) 일어난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의 배후를 놓고 국제사회의 진실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연관성을 제기한 반면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이를 거세게 반박하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 가능성까지 나오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은 이날 테러 직후 자신들이 이번 테러의 ‘배후’라고 자처했다. 반면 러시아는 테러범과 우크라이나 사이 연관성을 제기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은 23일 핵심 용의자 체포 뒤 이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향했던 점을 두고 “우크라이나 측과 관련 접촉을 했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날 오후 대국민 연설에서 같은 내용을 언급하며 배후 세력에 대한 엄벌 의지를 피력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강력 반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이번 공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IS에 있다”며 우크라이나 배후설 차단에 나섰다. 그밖에 복수의 백악관 관계자도 IS의 명백한 개입을 강조하며 우크라이나 연계 가능성에 대한 징후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볼로디미르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거세게 맞섰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일은 명백하다. 푸틴과 다른 인간쓰레기들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테러의 주범이 누구든 간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보라고 외신들은 평했다. 지난주 5선을 확정 지은 푸틴 대통령이 취임을 앞두고 벌어진 국가적 재난을 외부의 탓으로 돌려야 집권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것이다.
CNN은 테러를 두고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을 지지한 이유였던 안전성과 안보가 보장된 모습이 아니다”라며 “오늘날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24년 중 어느 시점보다 가장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국민 안전 보장을 못 한 책임을 바깥으로 돌리며 오히려 교착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 참여를 촉구하는 데 이번 사건을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 대통령은 23일 대국민 연설에서 “현재 우리의 공동 의무는 전선에 있는 동지들과 이 나라의 시민들이 하나의 대형으로 뭉치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내 여론 결집을 시도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러시아 군사문제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 UCL 교수를 인용해 △러시아의 자만심 △미국발 정보에 대한 불신 △미국의 경고가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나온 점 등을 현 러시아 행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앞서 7일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은 “극단주의자들이 모스크바에서 콘서트 등 대규모 모임을 겨냥하고 있다”는 보안 경보를 보냈다. 러시아 측은 이 경고를 무시했고, 푸틴 대통령은 대선 직전에 나온 이 경고를 ‘선거 방해’로 받아들였다는 해석이다.
한편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국의 지원 소식도 전해지면서 한층 더 확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합작 방산업체 KNDS가 우크라이나에서 군사 장비와 군수품을 생산할 것이라고 양국 국방부 장관이 22일 밝혔다. AFP,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양국 장관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전차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KNDS 자회사를 우크라이나에 설립해 군수품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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