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출시를 승인하면서, 오랜 기간 고위험 자산으로 인식됐던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 시장으로 들어왔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이 연기금의 투자 대상에 비트코인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반면 국내 금융 당국은 지금껏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투자 대상을 늘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코인이 고위험 자산이라는 이유로 기관 투자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정치권도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공약을 내놨지만, 여야 모두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은 담지 않았다.
◇ 日 공적연금, 비트코인에 관심…美 연기금도 가상자산 투자
2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공적연금(GPIF)은 최근 운용 대상 자산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비트코인과 금, 농지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GPIF는 지난해 말 기준 운용 자산이 225조엔(약 2000조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연기금이다.
일본 연기금은 오랜 기간 채권을 중심으로 안전한 운용 기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13년부터 일본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0%로 낮추면서, 연기금은 주식 투자 비중을 늘려왔다. 최근엔 위험을 분산하고, 더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비트코인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미국은 일본에 앞서 연기금의 가상자산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2018년부터 공무원 연금을 3개의 가상자산 펀드에 투자해 왔다. 이 밖에 하버드대와 예일대, 브라운대 등 여러 대학기금도 가상자산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 의회에서는 주(州) 퇴직연금, 공공보건 분야 개인 퇴직연금의 비트코인 투자를 허용하는 법안이 상원을 통과해 현재 하원에서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 국내선 기관의 코인 투자 금지
국내에서는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와 보유가 제도적으로 막혀 있다.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서 기관 투자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은행이 기관에는 가상자산 투자에 필요한 실명계좌를 발급하지 않도록 금융 당국이 행정 지도로 규제한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젊은 세대의 표심을 잡기 위해 고심 중인 여야도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 유예, 투자자 보호와 공시 등의 기능을 하는 전담위원회 설치 등의 공약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비트코인 현물 ETF의 국내 발행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야 모두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은 공약에서 제외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당국과 정치권은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지난해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코인 대량 보유 파문 등을 거치면서 가상자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부 거래소와 기금을 운용하는 대학 등에서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지만, 당국이 정책 방향을 바꿀 가능성은 상당히 작은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미 국민연금이 가상자산에 간접적인 방식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당국이 기관의 투자를 열어 달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미국 SEC에 제출한 주식 보유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3분기 미국의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 1993만4100달러를 투자해 주식 28만2673주를 매입했다. 국민연금의 매입 평균 가격은 주당 70.5달러였는데, 21일 뉴욕 증시에서 코인베이스는 256.88달러로 마감했다. 현재 달러 대비 원화 환율 1327원을 적용할 경우 국민연금은 지금껏 약 700억원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