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17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올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일본 증시는 변곡점을 맞이하게 됐다. 그동안 일본 주식시장의 상승 주요 동력이 슈퍼 엔저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 유입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다만 엔화가 당장에 강세 국면으로 접어들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한 이번 금융정책 변화로 단기적인 조정의 가능성은 있겠지만 일본 경기가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고 정상 경제로 접어드는 과정으로 판단, 향후 점진적인 상승 가능성을 열어뒀다.
버블경제 고점을 돌파한 일본 증시
지난해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강세를 보였다. 특히 올해 3월 들어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4만선을 돌파하며 새 역사를 썼다. 이는 거품 경제 시기인 1989년 12월에 기록했던 3만 후반대를 넘어선 기록이다.
이 같은 일본 증시의 부활은 엔화 가치하락(엔저)에 따른 수출기업들의 실적 향상과 상장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 개선 및 주주 친화 정책으로 외국인 투자자들과 자국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한 결과다.
특히 최근 중국은 경제 성장률 부진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와 미국 공급망 재편 등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증시 활성화 정책은 중국 증시에서 이탈한 외국인들의 자금을 흡수하며 지수를 끌어 올렸다. BOJ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일본 증시에 약 6조엔을 투자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2021년 이후 증국 증시로부터 해외 자금이 유출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자금이 일본, 인도, 한국 등 미국의 우방국으로 유입되는 흐름을 보였다”며 “특히 2022년 일본의 증시 활성화 대책 이후 지난해 들어 일본 증시로의 유입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코로나19 이후 경제회복과 엔화 약세에 따른 기업실적 증가, 배당 성향 상향 등 주주환원 정책 등이 일본 증시 상승을 견인했다”고 평가했다.
금리 올린 BOJ…증시 발목 잡을까
3월 19일 일본은행은 이틀간 진행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행은 지난 2016년 2월 디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해 은행에 돈을 맡기면 -0.1%의 단기 정책금리를 적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 0.1%포인트 금리 인상 결정함으로써 단기 금리를 0~0.1%로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대량의 국채 매입을 통해 장기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춰 0% 내외로 고정하는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도 폐지 결정했다. 그동안 주요 선진국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상황 속에서도 일본은행은 경기침체를 우려해 YCC 정책을 고수해 왔다.
2021년도 기준 일본은행의 장기국채 보유 비중은 45%였으나 지난해 80%까지 육박한 수준까지 근접하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나친 국채 매입으로 인한 시장 왜곡이 심하고 향후 리스크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다다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만 매월 약 6조엔 규모의 국채 매입은 유지되면서 당분간 금융장세에 비우호적인 요인은 제한됐다. 이는 BOJ가 금융정책을 정상화하더라도 통화완화 기조를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포워드가이던스로 해석된다. 실제 정책 정상화 발표 이후 일본 10년 금리는 장중 하락했고 엔화도 오히려 약세를 보였다.
시장전문가들은 이번 정책 변화가 연내 추가 긴축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엔화 약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한투자증권 김성환 연구원은 “실제 BOJ 위원들은 마이너스 금리 해제를 초 완화적이었던 부양 기조를 제거하는 정도로, 긴축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 중”이라며 “그동안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 강세가 거의 유일한 마중물이 되어준 현실을 감안하면 BOJ는 엔화를 강세로 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짚었다.
하이투자증권 이웅찬 연구원도 “엔화는 약하고 물가가 올라 국민 생활은 어려워져 일단 금리 인상을 결정했지만 추가 긴축은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롱 속 현금을 증시로
이번 금융정책 변화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일본 증시의 고점 신호가 아니라 경제 체질 개선으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한 결정이라는 평가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디플레이션을 벗어나는 구조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프리즘투자자문 홍춘욱 대표는 “이번 통화정책 변화는 금융장세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상 경제로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면서 “향후 임금 상승에 따른 내수시장의 활력이 증시 상승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일본 정부의 NISA(Nippon Investment Savings Account) 계좌의 세제 혜택 확대로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유입도 긍정적인 요소다. NISA는 일본 정부가 현금 보유 비중이 높은 일본 국민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내놓은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는 계좌다. NISA 계좌를 통해 주식이나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면 일정 기간동안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올해 일본 정부는 국민들의 투자 확대를 위해 비과세 기간을 무기한으로 늘리고 연간 납입 한도를 120만엔에서 360만엔으로, 누적 한도를 600만엔에서 1800만엔으로 대폭 상향했다.
일본은 가계의 현금 보유 비율이 54%에 달하는 국가로 이는 1980년대 주식 버블붕괴 이후 자리 잡은 현상이다. 이후 30년간 가계 현금 보유 비중은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는데 일본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으로 최근 주식시장이 오름세를 보이자 개인들이 주식투자 관심을 보이고 있어 현금 비중이 낮아지는 추세다. 여기에 더해 NISA 세제 혜택 확대가 개인들의 주식 비중을 추가로 확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NH투자증권 하재석 연구원은 “일본 정부는 NISA에서 투자되는 금융상품 규모를 5년 내 56조엔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수급 뒷받침이 되고 있는 만큼 일본 주식시장의 상승세는 아직 유효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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