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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尹으로 이어진 ‘그때 그 사람들’, 또 해묵은 ‘규제 완화’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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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기업 일자리 비중 14%, OECD 꼴찌”(24.02.28 동아일보)

대기업 일자리 비율 14% ‘OECD 최하위'(2024.02.28. 조선일보)

입시지옥·저출산·서울공화국? KDI “대기업 일자리 부족 때문”(24.02.27 한국일보)

[사설]中企 지원으론 대기업 일자리 못 늘린다는 KDI의 쓴소리(24.02.27 한국경제)

[사설]기업 활력 높여 양질의 일자리 늘리는 게 ‘고용 미스매치’ 해법(24.02.28 서울경제)

[사설]대기업 일자리 OECD최저…이대론 한국병 못 고친다(24.02.29 이데일리)

대기업 규제 풀라는 KDI 보고서…’왜곡 통계’로 썼다(24.03.07 경향신문)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에서 발표한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라는 보고서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보고서는 2021년 기준 한국의 종사자 250인 이상 대기업 일자리 비중이 14%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58%), 프랑스(47%), 영국(46%), 독일(41%)의 대기업 일자리 비중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고도 했다.

KDI 보고서는 대기업 일자리와 중소기업 일자리의 ‘격차’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상위권 대학 졸업생은 40대 초반이 되면 하위권 졸업생 임금의 50%를 더 받고 있으며, 임금 외에도 출산휴가 등 근로조건에서 격차가 존재한다. 당연히 대기업 일자리를 얻기 위해 치열한 입시 경쟁이 발생한다. 여기까지는 현상 진단이다. 보고서의 제안은 정부가 기업의 규모화(scale-up)를 저해하는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지원”과 “대기업 경제력 집중 관련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보고서 작성자인 고영선 KDI 부원장은 구독자 65만 명이 넘는 <언더스탠딩>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직접 이 보고서 내용을 설명했다. 각종 중소기업 지원책 때문에 기업들이 계속 중소기업으로 남아 있으려 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나타난다고 했다. 또 대기업에 대해서는 규제 완화와 고용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성과가 나지 않는 팀이나 프로젝트는 “정리”할 수 있어야 대기업이 고용을 많이 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또 대기업이 “노조 결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외주화를 한다면서 일자리가 불안정해진 책임을 노동조합에 돌렸다. 좋게 말해도 무척 특이하고 논쟁적인 주장이었지만, <언더스탠딩> 진행자들은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날카로운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언론은 <경향신문>이 유일했다. 핵심 내용인 ‘대기업 일자리의 부족’을 뒷받침하는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종사자 25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비중이 14%라는 것은 사업체 조사 기준이다. 그리고 통계청에 따르면 사업체란 “일정한 ‘장소’에서 단일 또는 주된 경제활동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기업체 또는 기업체를 구성하는 부분”을 뜻한다. 예를 들어 A라는 대기업의 공장이 안양, 부산, 구미에 있다면 사업체 조사에서는 각각의 공장이 하나의 중소기업으로 잡힐 수도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통계청 2022년 일자리행정통계(기업체 기준)상 국내 대기업(300인 이상·공공기관 포함) 일자리 수는 858만 개로 전체의 32.4%”에 달한다. 14%와 32%는 차이가 크다. 국책연구원의 보고서가 논란의 여지 있는 통계에 기반하고 있다면 결론의 타당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KDI는 왜 사업체 조사 기준으로 14%라는 숫자를 선택했을까? 국책연구원 부원장이 사업체 조사에 대해 정말 몰랐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단순히 일자리 격차를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최근 <조선일보>는 ’12 대 88, 쪼개진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는 제목의 기획연재를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88에 해당하는 하청노동자, 프리랜서, 저임금 노동자 등의 처우 개선을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와 원청 대기업의 시혜적 ‘상생’ 조치를 미화하고 건설노조 등 조직된 노동자를 공격하고 있다. 또 지난달 말 대통령실은 갑자기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약 87% 근로자” 지원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2022년 기준 13.1%니까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약 87%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주장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숫자의 유사성에 눈길이 간다. KDI는 14대 86, <조선일보>는 12대 88, 대통령은 13대 87. KDI와 <조선일보>와 대통령실이 던진 의제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원청 대기업의 책임을 일절 거론하지 않는다. 둘째, 노동조합을 기득권으로 몰아 비난한다. 혹시 윤석열 정부가 원하는 ‘노동개혁’의 동력을 다시 만들기 위한 분위기 조성 작업일까?

만약 KDI 보고서가 애초에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숫자와 논리를 조합해서 작성된 것이라면 내용을 구구절절 반박해 봤자 별 의미가 없다. 그래도 중소기업에 15년 넘게 다닌 지인에게 물어봤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지원을 몰아주기 때문에 오히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KDI 보고서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지인의 대답은 명쾌했다. “중소기업이 성장하기 힘든 이유는 대기업의 기술 탈취에 대한 보호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정부의 지원은 도움이 되지만 “젊은 직원을 몇 년 붙잡아 두는 정도”라고 답했다. 아마 중소기업에 다녀본 사람의 90% 이상이 비슷한 대답을 할 것이다. 아니면 원청 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를 거론하며 가슴에 맺힌 이야기를 털어놓을 것이다. KDI 보고서는 현실의 가장 명백한 문제를 외면하고 격차의 원인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진단했다.

중소기업이 커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동화 속 피터팬 때문이 아니라 R&D에 투자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 해도 그 과실을 원청이 다 가져가 버린다면 무엇 때문에 R&D에 투자하겠는가. 중소기업에서 기술 개발과 혁신이 일어나지 않으니 직원의 임금을 올려줄 여력은 당연히 생기지 않는다. 그나마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B2C(Business-to-Custumer) 부문에서는 스타트업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있지만, 대기업에 납품하는 B2B(Business-to-Business) 부문에서는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보면 안다. 그래서 정부의 기업 지원 또는 규제가 적절한지 아닌지를 논하기 이전에 원하청 구조의 문제를 먼저 살펴야 한다.

대기업 고용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자가당착에 빠진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면서 바로 그 대기업 일자리를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일자리로 바꿔놓겠다니. 여기서 고용을 더 유연화하면 KDI가 말하는 14%의 노동자마저 미래가 불안해져서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할 것이다. 여기에 대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중소기업 지원까지 줄여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시장의 사업 기회를 대기업이 독식하고 대다수 노동자는 대기업의 자회사, 하청, 재하청, 파견업체, 독점 플랫폼 기업 등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게 될 것이다. 격차 해소는커녕 디스토피아로 가는 길이다.

격차 해소를 위해 아래쪽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위쪽을 끌어내리자는 주장! KDI 보고서와 고영선 부위원장의 논리는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왠지 익숙하다. 그동안 기재부와 노동부가 기회만 있으면 꺼내놓던 주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기에 많이 회자된 노동개혁(노동개악이라고 불렸다)의 논리와 흡사하다. 왜 그럴까? 사람이 같아서 그렇다. 고영선 KDI 부원장은 박근혜 정부 때 노동부 차관으로서 노동개혁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인물이다. 아마도 그는 과거에 실패한 박근혜표 노동개혁안의 내용을 이번 KDI 보고서에 담아냈을 것이다.

10년 전인 2014년으로 잠시 가보자. 최경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규직 과보호’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정규직이 과도한 보호를 받다 보니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기업이 겁이 나서 정규직을 못 뽑는 상황이다.” 이 발언을 신호탄으로,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격차 해소를 위한 일이라면서 저성과자 해고(이른바 ‘쉬운 해고’)로 대표되는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노사정위에 한국노총을 데려다 놓고 합의를 종용한 결과, 2015년 9월에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이 나왔다. 합의문은 노동시간 확대(주 68시간 유지), 임금체계 개편 및 취업규칙 변경, 파견 확대, 최저임금 제도 개편 등 재계의 민원 사항으로 채워져 있었다. 어찌 됐든 합의문이 나오자 박근혜 정부는 ‘노사정 대타협’이라면서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노동개혁을 주도했던 김현숙 당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아직 승인받지도 않은 예비비를 사용해 언론에 홍보기사를 청탁하는 불법을 저질렀다. 하지만 김현숙은 숭실대 교수로 있다가 윤석열 인수위 정책특보로 부활했고, 지난달까지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를 지켰다.

그뿐 아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으로서 김현숙과 함께 노동개혁을 담당했던 이성희는 현재 고용노동부 차관이 되어 있다. 그리고 2015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에서 근무했던 이정한은 고용노동부에서 윤석열 인수위로 파견되어 갔다가, 지난해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이 되었다. 현재 ‘덩어리 규제’를 폐지하겠다면서 총 150명 규모의 규제혁신추진단을 이끌고 있는 한덕수 총리 역시 박근혜 정부에서 ‘쉬운 해고’ 추진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 노동개악을 시도했던 인물들이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또다시 사측 입장에 기울어진 ‘노동개혁’을 추진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을 추진했던 인물들이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표시했다. 이 그림에 등장한 인물들이 전부는 아니다. ⓒ안진이

지나치게 기울어진 내용,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 노동계의 거센 반발.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추진했던 노동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2016년 1월에 가서는 한국노총도 9.15 노사정 합의 파기를 선언했고, 그해 4.13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면서 관련 법안들은 폐기되었다. 우스운 것은 애초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경제민주화였다는 것이다.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맞춤형 복지로 국민행복시대를 만들겠다고 약속해 놓고 반대 방향으로 갔다. 대기업이 쌓아놓은 돈이 800조에 달했는데도 유연화로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도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취약계층 보호, 청년실업 등을 이유로 양대 노총 내 정규직 노조를 비난했다.

윤석열 정부는 애초에 경제민주화 같은 약속을 하지 않았다. 당선 후에는 대놓고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고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며 추진하려는 정책은 박근혜 정부의 실패한 노동개혁 내용과 유사하고, 그러기 위해 노조 혐오를 조장한다거나 ‘노사 법치’를 내세워 노조를 탄압하는 행태는 과거 이명박 정부와 닮았다.

또 윤석열 정부는 정부가 주도하기 어려운 정책의 동력을 만들기 위해 연구회나 위원회 같은 기구를 많이 만들었다. 대표적인 기구로서 2022년 7월에 출범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교수 12인으로 구성된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2022년 12월에 내놓은 권고문은 노동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등 윤석열 정부가 원하는 노동개혁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평가된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고용노동부 산하에 상생임금위원회라는 논의체를 구성해 “임금 문제를 총괄”하는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신기하게도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이 상생임금위원회 위원 명단에 있다. ‘노동’의 가치를 결정하는 상생임금위원회에 ‘자산’ 전문가가 들어와도 되는 걸까?) 대통령 직속 기구인 경사노위에는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연구회’라는 조직을 두고 있다. 이 두 기구에는 법학 교수와 경영학 교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노동문제 전문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권혁, 김기선, 권순원, 박철성 등 상당수 교수들이 윤석열 정부의 노동 관련 위원회, 연구회, 자문단에 중복으로 소속되어 있다. 평소 친기업적인 생각을 가진 교수들의 의견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될 위험이 크다.

▲박근혜 정부 때 노동개혁과 관련된 위원회에 있었던 전문가들과 윤석열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소속된 전문가들의 명단. 두 정부에 모두 걸쳐 있는 인물은 빨간색으로 표시하고, 윤석열 정부에서 2개 이상의 기구에 중복 소속된 인물은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권순원 교수의 경우 빨간색과 파란색에 다 해당하지만 박근혜 정부와의 연관성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빨간색으로만 표시했다. ⓒ안진이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를 돕는 이 ‘전문가’들 중에도 박근혜 정부 시기의 노동개혁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있을까? 명단을 살펴보니 박근혜 정부 때 노사정위 내 위원회와 윤석열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공통으로 이름이 포함된 인물은 3명이었다. 조준모, 박지순, 권순원. 가장 바빠 보이는 인물은 권순원 교수다. 그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에서 모두 노동 관련 법·제도 개편에 관여했으니 처세의 달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10년 전 인물들이 다시 나와서 10년 전 이야기를 또 하고 있다. 위기일 때나 위기가 아닐 때나 그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똑같다. 격차를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면서 피라미드 꼭대기의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말한다. 그때 틀렸던 이야기는 지금도 틀렸다. 격차가 그렇게 걱정된다면 아래쪽부터 손대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싶다면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 그런 취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한 노조법 2‧3조 개정안부터 되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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