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의 음식 가격 등 각종 생활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노력하나 효과가 작은 것 같아 안타깝다. ‘사과를 집었다 등골이 서늘했다’는 자극적 보도도 있다. 사과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은 지난해 이상기후 등 여러 요인으로 생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에 납품업체 단가지원, 할인지원 사업확대, 대체 과일 수입확대 등 다양한 대책을 정부가 추진 중이다.
하지만 다양한 시책을 추진해도 효과가 적다. 햇사과가 나오는 7월까지 기다리자고 하니 ‘천수답’식 대책이라고 비난한다. 하루빨리 사과 수입을 증대시키기 위해 사과에 대한 검역을 완화하자는 소리도 들린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정부 당국자들에게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물가대책은 당면한 현안수습보다 중장기적 대응이 중요하다. 농산물의 가격안정대책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심도 있는 관측전망을 토대로 정부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예측전망이 항상 실적과 일치하지 않으나, 정부는 관측전망을 토대로 수매비축 등 입체적 대책을 수립하자. 사과는 수매비축 대상 품목이 아니라는 등 꽉막힌 소리에서 탈피하자.
둘째, 농산물 가격안정대책을 검역, 통관 등 다른 정부정책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 사과 가격이 상승하니 사과수입 검역을 완화해 신속하게 수입하자는 주장도 들린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나, 현장을 모르거나 정책을 모르거나 국제규범을 모르는 소리이다. 식물 검역은 국제무역 규범에서도 인정하는 중요한 국가 보호수단이다. 국민 먹거리를 외국 병해충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방지하는 중요한 장치가 식물검역이다.
엄격하게 규정대로 시행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을 방문한 네덜란드 국왕과의 정상회담에서 일이다. 당초 의제에 없었던 네덜란드산 쇠고기 수입을 조기에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농식품부 장관이 답변하라고해 필자는 네덜란드산 쇠고기 수입은 8단계 검역 절차중 5단계 과정에 있으며, 남아있는 검역 과정을 국제적 기준과 과학적 근거에 의거 추진하겠다고 답변했다. 더 이상의 양보가 없었고 추가요구도 없었다.
한국에 사과 수입을 요청한 국가가 11개국이나 된다고 한다. 검역을 완화해주면 이들 국가의 사과가 한국에 많이 들어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많은 부작용과 피해가 우려된다. 이들 국가의 검역을 완화해주면 조만간 중국도 검역 완화를 요구할 것이다.
필자는 실무자 시절 중국 산둥반도의 사과와 배 재배지역을 둘러보았다. 하루 종일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과, 배 재배지역을 다니면서 깊은 고민을 했다. 만일 중국산 사과나 배가 한국에 저가로 들어오면 한국 과수산업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물가안정 대책, 특히 농축수산물 가격안정대책은 융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작황이나 수급 등 외형만 보지 말고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여름에 배추 가격이 오르면 너도나도 대관령 고랭지 배추 재배현장에 가서 작황을 보고 사진을 찍는다. 경제부처 고위직들에게는 ‘대관령 배추밭에 갔다 와야 승진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비가 부족해 작황이 좋지 않으면 고랭지 배추가격이 올라 난리를 친다. 어느 때는 많은 돈을 들여 트럭으로 물을 싣고 올려 고랭지에 뿌리기도 했다. 엄청난 비효율적 행위였다. 고민 끝에 평소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양수장(4개)과 저수조(6개)를 안반데기 지역에 건설했다. 평소에 빗물을 저장하고 물이 부족할 때는 물을 펌프질해 올려 고랭지 배추밭에 뿌렸다. 대관령 고랭지 배추가 물 부족으로 배추값이 오르는 상황은 종결됐다. 농산물 가격 대책은 융복합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보여준다.
식품 소비패턴도 변한다. 젊은이들은 채소류 중심의 샐러드를 주로 애용한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4㎏이다. 3대 육류(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소비량은 60.6㎏이다. 사과, 배 등 6대 과일류 소비량은 55㎏이다. 소비량을 기준으로 보면 쌀과 더불어 육류나 과일류도 중요하다.
정부정책은 시대상황과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기본 정신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서울 모 대학의 식품영양학과 교수들을 만났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농식품부 조직과 명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농식품부는 식품산업의 주무부처다. 그런데 지난해 식품을 주관하는 1급 ‘식품산업정책실’이라는 조직을 ‘농업혁신정책실’로 변경했고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식품산업의 주무과인 ‘식품산업정책과’ 명칭을 ‘푸드테크과’로 바꾼 것은 너무나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푸드테크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대학교수들도 다양한 채널로 농식품부 식품업무를 성원했는데 정작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식품을 다루는 식품정책실장이나 식품정책과 명칭을 없앤것은 식품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세계적 식품트랜드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기에 원상회복하라고 주장한다. 사과가격이 오르니 사과검역을 완화해 사과수입을 확대하자는 주장이나 비슷하다. 정부 정책은 근본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물가대책도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융복합적 관점에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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