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5세대 HBM(고대역메모리·HBM3E)’ D램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고 엔비디아에 공급하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HBM 시장 주도권을 이어간다.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도 HBM3E 양산 채비를 갖추고 고객사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서 3월 말부터 엔비디아를 포함한 주요 고객사에 공급한다고 19일 밝혔다. SK하이닉스가 이번에 양산한 HBM3E는 D램 칩을 8개 쌓은 8단 제품이다.
앞서 2월 미국 마이크론은 자사가 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엔비디아에 공급한다고 밝혔으나, 반도체 업계에선 관련 수율이 절반에 채 미치지 못하는 만큼 진정한 의미에서 양산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3E 생산 과정에 ‘어드밴스드 MR-MUF’ 공정을 적용해 마이크론보다 수율이 3배 이상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진정한 의미에서 HBM3E 양산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MR-MUF란 HBM을 만들기 위해 6개의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액체 형태 보호재를 빈 곳에 주입하고 굳히는 공정을 말한다. 칩을 쌓을 때 가해지는 압력을 줄이고 휨 현상을 제어함으로써 경쟁사가 HBM에 채택한 NCF(비전도성 접착 필름) 방식보다 수율 면에서 크게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HBM3E는 엔비디아가 올해 2분기 출시하는 AI 반도체 ‘그레이스호퍼(GH)200’에 이어 올 4분기 출시 예정인 차세대 AI 반도체 ‘블랙웰(B)100’과 ‘블랙웰200’에 탑재된다.
김기태 SK하이닉스 HBM 세일즈&마케팅 부사장은 “올해 (SK하이닉스의) HBM이 이미 ‘완판’됐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올해 ‘실리콘 관통전극(TSV)’ 공정을 통해 생산할 수 있는 모든 HBM 수량을 엔비디아가 사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가 이렇게 SK하이닉스 HBM3E를 선호하는 이유는 경쟁사보다 발열제어 면에서 우수하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D램을 적층해 만드는 HBM은 그 구조상 기존 GDDR(그래픽더블데이터레이트메모리) D램보다 발열이 크다. 때문에 발열제어 기술로 장시간 제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수율과 함께 D램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블랙웰에는 24GB(기가바이트) 용량의 HBM3E D램 4개(총 192GB)가 통합돼 있다. 블랙웰로 만든 대형 딥러닝(기계학습) 시스템인 ‘HGX 블랙웰100·200’에는 총 1536GB의 HBM3E D램이 탑재된다. 블랙웰은 마이크로소프트(오픈AI)·구글(딥마인드)·아마존(AWS)·테슬라 등 빅테크들이 이미 선매한 상황이다.
증권가에선 이렇게 막대한 HBM 수요에 힘입어 SK하이닉스가 올해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둘 것으로 본다. 정민규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전날 “SK하이닉스는 HBM3E 양산을 시작하고 높은 수율을 바탕으로 경쟁사보다 더 빠른 실적 개선이 전망된다”며 “1분기 매출은 전년보다 132.7% 증가한 11조8378억원, 영업이익은 1조2746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HBM3E로 촉발된 반도체 시장 업턴(상승세)에 맞춰 삼성전자도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고 AMD·인텔 등으로 공급처를 확대함으로써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칩을 12개 쌓은 HBM3E 12단 D램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힌 데 이어 상반기 중 양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엔비디아 GTC 2024 행사에 참석해 HBM3E 12단 D램 실물을 전 세계 AI 기업 관계자들에게 시연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약 13만장의 HBM을 생산하며 HBM 시장 점유율 1위를 탈환할 계획이다. 지난해 기준 4만5000장 수준이던 생산능력(캐파)을 3배 가까이 늘리는 것이다. 올해 SK하이닉스도 전년보다 약 2.7배 늘어난 12만~12만5000장으로 HBM 생산능력을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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