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 마주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왜소한 체격에 늘 평범한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는 빼어난 미남도 아닐 뿐더러 그리 달변도 아니다. 말을 뱉기 전 자주 머뭇거리고 때로는 말투에서 어눌함까지 느껴진다. “유년기 공상과학소설(SF)을 좋아하던 흔한 괴짜(nerd·geek)였다”는 그의 고백을 들을 때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올트먼이 등장하거나 입을 열 때면 일순, 공간이 그에게 쏠리는 듯한 기분이다. 나폴레옹을 마주친 헤겔이 “오늘 시대정신을 봤다”고 적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마 그것이 작금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만이 지닐 수 있는 오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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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챗GPT로 올트먼을 알게 된 이들이 많지만 그는 오픈AI 합류 이전부터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정점’에 자리한 인물이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 CEO를 맡으며 전설적인 투자를 이끌어온 덕이다. 와이콤비네이터에서 그가 초기 투자를 주도한 스타트업은 총 280여 개. 대표적인 면면만 에어비앤비와 스트라이프, 도어대시, 코인베이스, 레딧 등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챗GPT가 불러일으킨 혁명과 함께 그는 ‘실리콘밸리 명사’에서 지구 내 최고 중요 인사로 도약했다. 자연히 요즘 올트먼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해 챗GPT 신버전 출시를 이어가며 한국을 비롯한 60여 개 나라를 순방했고 GPT-5를 개발하고 있는 현재도 세계 각지를 오가며 글로벌 인공지능(AI) 인프라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요즘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느냐”는 질문에 “알다시피 내 시간은 제한돼 있다”고 답해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 올트먼이다.
그럼에도 올트먼은 없는 시간을 짜내 후배 스타트업 창업가들에 대한 지원을 놓지 않고 있다. 올트먼의 지난해 6월 방한이 성사된 배경에는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의 “한국에 훌륭한 AI 스타트업이 많다”는 권유와 함께 중소벤처기업부 초청이라는 점이 주효했다고 한다. 당시 올트먼은 한국 대기업 총수가 아닌 스타트업과의 만남만을 요구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스타트업만 만났다니 ‘거짓말 하지 말라’는 반응까지 있었다”고 회상한다.
14일(현지 시간) 중기부와 오픈AI가 주최한 K스타트업 피칭 행사에 등장한 점 또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향한 올트먼의 ‘진정성’을 알 수 있게 한다. 예정에 없던 시간을 낸 그는 의례적인 인사치레도 없이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모두 답해주겠다”며 10분간 허심탄회한 답변을 이어갔다. 극비임이 분명할 GPT-5 개발 진척 상황에 대한 단서도 거침없이 답했음은 물론 직접적인 아이디어를 구하는 질문에는 “절대 조언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일침도 날렸다. “AI 스타트업에 일반적인 비즈니스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본’에 충실해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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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의 말에 세계 최고 VC를 이끌고 생성형 AI 혁명을 주도한 ‘무용담’이 단 한 톨도 없었다는 것이다. 올트먼의 답변은 모두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한도 내의 현실적 조언에 머물렀다. 거부를 거머쥔 한국 창업자들의 강연을 수없이 봐왔다. 좌중을 휘어잡는 재담가도 많았다. 그러나 ‘자랑’이 빠진 담백한 멘토링은 들어본 적이 없다. 1시간의 강연이 자신의 성공담만으로 가득 차는 경우도 흔하다. 스타트업보다는 자기개발에 적합한 무대다. 후배 창업가들에게 어떤 ‘인사이트’가 남을까.
시장경제 최전선인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창업가들은 후진 양성을 당연시한다. 반면 부를 쌓은 후 은둔하거나 ‘재벌 놀이’에 취해 있는 일부 한국 벤처 1세대와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어떠한가. 그들 중 올트먼보다 큰 성공을 거뒀거나 바쁜 사람이 있을까. 올트먼과의 ‘시원한’ 대화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답답한 고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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