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라고 취업을 바로 하고 또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기업이 원하는 것과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이 원하는 것이 딱 맞지 않아서 주변에는 취업보다는 더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서울대 기계공학과 4학년 A씨)
7일 찾은 서울대학교 유회진 학술정보관 다목적실에선 ‘2024년 상반기 이공계 채용박람회’ 가 한창이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이 부스를 열고, 채용을 위한 자사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채용문을 열어둔 것과 달리, 정작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이날 기자가 만난 다수의 학생은 당장 취업하기보다는 대부분 대학원을 진학하겠단 의사를 더 많이 밝혔다.
A씨는 “아직 어떤 분야로 갈지도 모르겠고, 전문성이 없다고 생각돼서 대학원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2학년 전기공학과 B씨는 “선배들은 취업하기보다 대부분 대학원을 진입하거나 스타트업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기업으로 바로 취직하는 선배들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반도체·배터리 업계 구인난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기업들이 젊은 구직자들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업계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의 인력 양성책도 답보 상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지난해 발표한 ‘2023년도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반도체 분야에서 입사 1년 미만자 중 그해에 퇴사한 조기 퇴사 인원은 총 1929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신입자가 1763명으로, 경력자 166명 대비 약 10배 이상 높았다. 신입자의 조기 퇴사율은 81.2%로, 12대 주력산업 내에서도 전자(86.6%), 섬유(82.5%), 조선(81.4%)에 이어 4위로 상위권이었다.
부족 인원수도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반도체 부문 부족 인원은 2020년 1621명에서 이듬해 1752명으로 증가하더니, 2022년 1784명으로 2년 연속 상승했다.
배터리 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말 기준 석·박사 인력은 수요 대비 700명 가량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터리 산업이 지난 수년간 빠르게 성장해온 것에 비해 관련 인재 양성은 더딘 상황이다.
국가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와 배터리 업계가 비인기 직종으로 전락한 건 무엇보다 불확실한 임금과 안정적이지 않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이 이유로 꼽힌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자신이 들인 노력 대비 결과가 확실해야 동기 부여가 생기는데 현재 이들 산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내로라하는 반도체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상위권 대학에서 학부 전공과 대학원 석·박사까지 해야 한다”면서 “소위 MZ 세대들은 이러한 노력에 비해 현재 기업들의 처우나 연봉이 낮고, 근무 환경도 좋지 않다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전자 DS 부문 초과이익성과급(OPI)은 0%로 책정됐고, 하반기 기준 목표달성장려금(TAI) 지급률도 상반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성과급이 크게 줄자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 직원은 “올해로 일한 지 10년 차인데 OPI를 못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업황 악화와 실적 부진 때문인 것은 이해하면서도 막상 성과급을 받지 못하니 주위 동료들도 모두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번지면서 최근 취업 연계를 보장하는 대학 계약학과 인기도 사그라들었다.
종로학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연세대·고려대·서강대·한양대 등 4곳의 반도체 계약학과 정시 전형 미등록률은 169.1%에 달했다. 전체 55명 모집 계획을 세웠는데 93명이 합격했음에도 등록하지 않았다. 수시 전형 역시 전체 142명 모집 가운데 158명이 등록하지 않으면서 미등록률이 111.3%로 높았다.
연구개발 인력 수혈이 시급한 배터리 기업들도 서울대·연세대·고려대·포스텍·카이스트 ·유니스트·성균관대·한양대 등 국내 유수 대학에 배터리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석·박사 과정이기 때문에 한 학교에서 1년의 10명 안팎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데 그친다. 부족한 인력 수요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교수 1명당 관리할 수 있는 학생 수에 한계가 있고, 특히 막 졸업한 주니어(저연차급)들에게는 해외로 갈 기회가 많다”며 “인력 양성 사업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계약학과가 소위 ‘상위권’ 대학에만 설치돼 있는 것도 한계점으로 꼽힌다. 굳이 계약학과를 졸업하지 않아도 해당 기업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기업 계약학과는 의대나 약대 다음 라인으로, 비교적 최상위 성적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면서도 “최근 상위권 학생들은 취업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특정 분야 기업에 국한되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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