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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올 들어 미국행 비행기에 한 달에 한 번 이상 몸을 싣고 있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미국 정부와의 보조금 협상 때문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15일 “한 푼이라도 보조금을 더 따내기 위해 임직원들이 절실하게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보조금 자체가 탐난다기보다 미국의 호의를 무시했다가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더 컸다. 회계장부 공개, 초과이익 환수 등 보조금 지급에 달라붙어 있는 독소조항 때문이다. 당시 삼성 내부에서는 차라리 보조금을 덜 받아야 장부를 부실하게 제출하더라도 미국에 꼬투리를 덜 잡힐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삼성 입장에 온도변화가 나타난 것은 결국 실적부진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ASML 지분 등 알짜 자산까지 내다 팔 정도로 현금 고갈을 겪었다. 기업이 영업을 통해 실제로 벌어들이는 현금을 뜻하는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지난해 약 44조1374억 원으로 전년 대비 30% 가까이 감소했다. 매년 시설투자에 50조 원, 연구개발(R&D)에 25조 원 가량을 쏟아 붓는 삼성전자로서는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삼성이 시설투자 규모를 줄이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왔는데 미국에서 8조 원 이상의 현금 수혈을 받아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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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는 것처럼 향후 미국 정부가 삼성에 더 큰 반대급부를 요구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당장 삼성전자가 수령할 보조금이 당초 알려진 20억~30억 달러에서 60억 달러 이상으로 증가하면서 삼성의 추가 투자 규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은 당초 텍사스 테일러시에 173억 달러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팹을 짓겠다고 발표했으나 물가와 인건비 상승 등의 영향으로 실제 투자 금액이 5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별도로 삼성은 앞으로 20년 동안 텍사스 테일러와 오스틴에 1921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는 투자 계획서를 제출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보조금 증액을 위해 당시 투자계획서 일부 투자를 확약했을 가능성이 있다. 외국계 반도체 장비 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일종의 매칭 펀드 방식으로 보조금 지급 프로그램을 짰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재선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투자 확대 계획을 받아냈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투자 부담이 커진 것을 넘어 삼성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일명 ‘팀 아메리카’ 전략에 삼성 역시 지원군으로 참전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미국은 현재 인텔(파운드리)과 마이크론(메모리)을 앞세워 전방에서 삼성을 압박하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에 맞대응하기 위해 연합군을 늘려야 하는 숙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김용석 성균관대 교수는 “미국이 반도체 부문에서 중국과 전선을 펼치기 위해서는 인텔과 같은 자국 기업뿐 아니라 삼성과 같은 기업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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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미국이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乙)’인 TSMC를 100% 믿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정학적 상황을 봤을 때 대만에 언제든지 친중(親中)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TSMC가 최근 미국보다 일본에 더 적극적으로 공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일본에 지사를 신설하거나 공장을 연 대만 반도체 기업은 총 9곳에 이른다. 엔저와 같은 특수 요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화적 유사성 때문이다. 실제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서도 공장을 짓고 있지만 현지 노조의 반발 등으로 대만 기술자를 데려오는데 어려움을 겪는 등 팹 건설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최근 구마모토현 1공장을 완공하고 2027년 2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는 일본과 정반대 상황이다. 24시간 3교대 근무를 기본으로 생각하는 TSMC가 미국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주적은 기본적으로 중국이고 한국은 이 가운데에서 최대한의 실리를 취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고도의 외교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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