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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은행들이 역대 최대 순익을 거뒀지만 비이자이익 비중은 전년에 비해 3%포인트가량 찔끔 늘어나는 데 그쳤다. 비이자이익 중에서도 시장금리 하락 덕에 장부상 늘어난 몫이 대부분이어서 이자이익 위주의 영업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14일 발표한 ‘2023년 국내은행 영업실적’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21조 3000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5%(2조 8000억 원) 늘어 역대 최대 기록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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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한 것은 총이익(이자이익+비이자이익)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이익은 65조 원으로 전년보다 9.4%(9조 4000억 원) 늘었다. 이자이익은 59조 2000억 원으로 3조 2000억 원, 비이자이익은 5조 8000억 원으로 2조 4000억 원 증가했다. 반면 비용 격인 판매비와 관리비는 26조 6000억 원으로 전년(26조 3000억 원)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면서 전체 순익이 늘었다. 위기 상황에 대비한 대손 비용은 10조 원으로 전년보다 55.6%(3조 6000억 원) 증가했다.
다만 은행권의 고질적인 문제로 금융 당국까지 나서 개선을 요구했던 이자이익 쏠림 현상은 소폭 개선되는 데 그쳤다. 지난해 비이자이익은 5조 8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70% 가까이 늘었지만 전체 총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9%로 전년 대비 3.2%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치며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비이자이익의 총이익 비중은 2019년 14%, 2020년 15.1%, 2021년 13.2%로 두 자릿수를 기록하다 2022년 5.7%로 급감했다. 반면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1.1%로 전년 94.3%에 비해 소폭 줄었지만 최근 5년 평균인 88.6%를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금융 당국이 지난해 은행의 비이자이익 확대를 주문하고 제도 개선책도 마련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크지 않았던 셈이다.
비이자이익의 절대 규모가 늘기는 했지만 ‘질’이 좋지 않다. 실질적인 사업 강화의 결과가 아니라 경영 환경 호재에 기댄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유가증권 평가손익이 전년보다 3조 8000억 원이나 늘었지만 이는 지난해 시장금리 하락에 따라 은행이 보유한 유가증권의 장부상 가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신탁 관련 이익과 수수료 이익은 전년보다 각각 2000억 원, 1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외환·파생 관련 이익은 같은 기간 1조 2000억 원 줄며 오히려 적자로 돌아섰다.
금융권은 올해도 비이자이익이 크게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등과 달리 국내에서는 은행의 수수료 부과나 파생상품 판매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로 ELS 판매도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씨티, 웰스파고 등 미국 주요 은행들은 계좌를 유지하는 데만 월평균 13달러의 수수료를 떼어간다. 국내 은행과 달리 이자율 스와프나 외환 선물 선도 시장 등 위험을 감수한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얻는 수익도 상당하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국내 은행이 비이자이익을 늘리려 해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면서 “미국 은행들처럼 전 세계 파생금융 상품과 채권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메이저 플레이어라면 모를까 시장 움직임을 쫓기 바쁜 우리 금융사가 고위험 상품 비중을 늘리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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