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자율 배상안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배상 비율이 낮다는 것이 이유인데, 분쟁 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집단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홍콩H지수 ELS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달리 공모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한 데다 상품 구조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소송을 통해 더 많은 배상금을 받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판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데다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점도 부담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 ELS 피해자들은 오는 15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부 앞에서 3차 집회를 열고 배상안 재산정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들은 최후의 카드로 집단소송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 자율 배상안을 살펴보면 시중은행의 실질적인 배상 비율은 최대 50%다. 적합성 원칙 및 설명의무 위반, 부당권유 여부에 따른 기본 배상 비율 20~40%에 불완전판매를 유발한 내부통제 부실 책임에 따른 은행 가중비율 10%를 더한 수치다. DLF 사태 때는 최대 65%였다.
길성주 홍콩 ELS 피해자모임 위원장은 “피해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은행의 입장에서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배상안이다”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최소한 (기본배상) 비율이 60~70% 이상은 나와야 한다”며 “각 은행에서 (자율 배상안을 기초로) 얼마나 충분하게 배상하느냐를 보고 투자자의 입장과 맞지 않으면 집단 분쟁조정도 강행할 것이고, 그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집단 소송도 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금감원은 다음 달부터 ELS 불완전판매 대표 사례를 선정해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개최,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한다. 다만 앞서 발표한 큰 틀의 배상안을 바탕으로 논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기대한 수준의 배상이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은행 역시 배임 우려와 실적 여파 등을 고려해 배상 비율을 보수적으로 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소송이 자율 배상보다 실익이 클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다수의 금융투자상품 불완전판매 분쟁 조정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금감원이 최근 발표한 자율 배상안은 소비자 보호가 과거보다 강조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라며 “과거 DLF와 비교해 ELS는 상품 자체의 구조적 문제를 발견하기 어렵고 공모 방식으로 진행된 보편적인 상품이라는 점에서 불완전판매 소지가 명백한 사례가 아닐 경우 소송을 통해 더 많은 금액을 배상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ELS 사태와 관련해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DLF 때와 비교해 홍콩 ELS 투자자들이 배상을 더 많이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금감원이 발표했듯이 은행은 절차와 형식만 지켰을 뿐, 고위험 상품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해 적합성의 원칙을 위반했고 고령의 투자자들에게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괜찮다’는 식의 왜곡된 사실을 전달하고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중점으로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앞서 지난해 1월 DLF 배상 소송에서 처음으로 투자자가 승소한 사례가 나왔는데, 당시 재판부는 DLF를 판매한 하나은행 측이 투자자에게 상품 구조와 손실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프라이빗뱅커(PB)가 원고들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사항에 관한 설명의무를 위반하고, 위험성을 수반할 수 있는 거래를 적극적으로 권유해 고객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저버렸다”며 손실액의 60%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금감원이 제시한 배상 비율보다 법원이 낮은 수준을 제시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05년 우리은행 ‘파워인컴펀드’ 불완전판매의 경우 금감원 분조위는 판매사에 50%를 배상하라고 권고했으나, 대법원은 20~40%로 낮게 판결했다. 이 펀드는 당시 2200여명에게 1500억원가량 팔렸는데, 2008년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손실이 커져 만기에 원금을 날린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당시 법원은 판매사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소비자들 또한 신중히 투자할 필요가 있었다는 취지의 결론을 덧붙였다.
금감원은 앞서 제시한 수준 이상으로 배상 비율을 높이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지난 11일 자율 배상안 관련 브리핑에서 “DLF보다 판매사 책임이 더 인정되긴 어려울 듯하다”며 “배상비율이 20∼60% 범위내에 분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DLF 사태 당시 손실 배상 비율은 20~80%였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DLF 때와 (이번 ELS 건이) 다르다는 것도, 소송으로 갔을 때 분조위, 금융 당국에서 판단한 것과 (법원의 판단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법률 업무를 하는 분은 모두 알 것이다”라며 “홍콩H지수 ELS 배상안이 다른 사례보다 섬세하게 설계된 점을 고려하면 (투자자들이 소송을 할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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