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사는 어릴 적 친구가 안동 간고등어를 보내줬습니다. 잘 구워 놓으니 보기에도 먹음직했습니다. 두툼한 살집에 색깔도 반들반들, 자르르 기름 도는 걸 젓가락으로 크게 한 점 떼어 입에 넣으니 맛은 고소하고 식감은 부드러웠습니다. 껍데기도 바삭바삭 입에서 녹았지요.
아침 밥상 앞 TV에서는 총선 소식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TV에 눈을 주면서 우물우물 고등어를 씹는데 정치인과 시민단체 사람 몇몇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작년 여름 온 국민을 불안케 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에 나섰던 사람들입니다. “방류되면 우리나라 어부들이 우리 연근해에서 잡은 수산물도 먹으면 방사능에 오염돼 큰일 난다”고 겁을 주던 그들이 궁금해졌습니다. ‘그 사람들도 그동안 생선을 아예 안 먹지는 않았을 텐데, 생선 입에 넣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각이라는 걸 하기나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은 작년 7월 1일 민주당이 주최한 서울시청 앞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규탄 범국민대회’에서 “저는 똥을 먹을지언정 후쿠시마 오염수는 먹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 같지도 않은 말로 국민 선동에 나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임종성입니다. 그가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그날 그의 말도 기괴했지만, 그의 모습도 기괴했기 때문입니다. 양복 차림에 오른쪽 귀에 파란색 꽃을 꽂고 나온 그의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종종 마주쳤던, 6·25전쟁 통에 부모님 잃고 실성한 동네 누나가 귀에 꽃을 꽂고 헤 웃고 다니던 불쌍한 모습 같았습니다.
똥을 먹었는지 오염수를 먹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는 지금 교도소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지난달 8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집행유예가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하더니, 바로 며칠 뒤에는 1억 원대의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감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들보다 추위를 더 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귀에 파란색 꽃을 꽂은 임종성 다음에 떠오른 사람은 양이원영이었습니다. 그도 민주당 소속 의원입니다. 오염수 괴담으로 국민 선동에 나섰던 그의 기세도 대단했습니다. 그는 현지에서 방류 반대 운동을 벌이겠다며 윤미향 등등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모아 몇 번씩이나 일본에 갔지요. 하지만 후쿠시마 방류장에는 접근도 못 한 채 대신 도쿄에서 방류 반대 시위를 펼치면서 한글 현수막을 내걸어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나 후쿠시마 원전 운영 회사인 도쿄전력에 보이려고 만든 현수막이 아니라 국내 지지자들에게 “나 이렇게 열심히 반대 운동하고 있소”라고 보여주려 만들었다는 뒷말이 나온 건 당연했습니다. 그는 이번에 공천을 못 받았는데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헛발질로 드러난 방류 반대 운동의 책임을 ‘연약한 여성 초선 비례’ 양이원영에게 덮어씌운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대표 이재명도 그때 여러 사람 웃겼지요. 7월 1일 규탄대회에서 “후쿠시마 오염수가 아니라 핵 폐수로 불러야 한다”고 소리친 그는 이후 이어진 전국 순회 규탄대회 때 들른 목포에서 생선회를 먹은 게 드러났습니다. 그가 목포에서 회를 먹은 날은 ‘핵 폐수’ 방류 일주일째였는데,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회를 씹고 삼켰을까요? ‘내가 생선회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더니 진짜 안 되는 줄 알았냐?’ 이런 생각이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그때 민주당 ‘후쿠시마 오염수 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위성곤의 행실도 거론해야겠습니다. 여러 토론회에 민주당 대표로 나와 원전 전문가들에게 누가 들어도 억지인 주장을 잔뜩 풀어놓았던 위성곤은 방한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를 만나서도 같은 소리를 계속해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만 짓게 했습니다. 위성곤의 이런 행실은 분명히 “한국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국민은 무지하고 무식하다”는 인상을 만방에 심어줬을 겁니다. 제주 서귀포에서 재선을 한 그는 양이원영과는 달리 이번에도 공천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이재명의 비위를 맞추는 무슨 비법이 있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방송과 신문에서 우리나라 바다에서 잡힌 생선도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기를 쓰고 말한 모모한 시민단체 대표들과 몇몇 대학교수 얼굴도 생각납니다. 그중 한 명은 불과 8년 전의 자기 소신을 180도 뒤집은 게 드러나자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원자력을 가르친 학자였던 그는 2015년에는 “인체에 위험한 수준까지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려 우리 식탁에까지 오르기란 불가능하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자면 건장한 남성을 기준으로 후쿠시마 연안에서 오염수를 마신 생선을 꾸준히 150마리 정도 먹어야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는 돌연 방류 반대론자가 되어서는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가 한국 해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으니 믿고 들은 국민으로서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그가 왜 자기 말을 뒤집었는지는 수수께끼입니다. ‘혹시 그도 정치권 진출을 노렸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랬다면 오산도 그런 오산 없을 겁니다. 그도 얼굴이 남들보다 두껍기는 했지만, 정치인이 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정치인은 말 뒤집은 게 드러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재명이 대표적이지요. 정치인이 되려면, 그리고 정치인으로 대성하려면 말 뱉은 바로 그 자리에서 금방 다른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행일치’가 아니라 ‘언행 불일치’를 삶의 좌우명으로 삼지 않으면 정치인이 될 수 없고, 된다 하더라도 크게 되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너는 이재명을 비롯해 민주당 사람만 언행 불일치라고 하느냐?”고 물으실까봐 미리 대답 드리겠습니다. 국민의힘에 그런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아직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고, 띈다고 해도 민주당 사람들처럼, 이재명처럼 너무나 태연하게 자기 말 뒤집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 말을 안 믿겠다고요? 고등어구이를 한번 들어보세요. 아니, 고등어 말고 광어 우럭 갈치 전복 멍게 해삼 멸치나 김 미역 등등 수산물을 드셔도 됩니다. 그리고 지난여름 그 사람들 생각을 해보세요. 어쩌면 입에서 욕이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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