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연구팀 “폐경 후 수명 길어져…딸·손녀와 번식 경쟁 피하고 후세 생존 도와”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폐경은 동물 세계에서 매우 드문 현상이며 폐경이 왜 어떻게 진화했는지 역시 오랜 의문으로 남아 있다. 영국 연구팀이 이빨 고래류 암컷의 폐경은 수명을 늘리기 위한 진화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영국 엑서터대 새뮤얼 엘리스 박사팀은 14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서 이빨고래류에서 암컷이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번식 기간은 늘리지 않으면서 총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방식으로 폐경이 진화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결과는 이빨고래류에서 폐경이 암컷이 번식 기능을 계속 유지할 경우 불가피해지는 딸이나 손녀와의 짝짓기 경쟁을 피하면서 후손 세대의 생존을 돕기 위해 진화한 것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진화 과정은 동물이 자기 유전자를 미래 세대에 많이 전달할 수 있는 형질과 행동을 선호한다. 암컷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평생 번식을 하는 것이며 그것이 거의 모든 동물 종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수명이 수십 년 남아 있는 포유류 암컷에서 폐경은 보편적인 진화 원칙에서 명백히 벗어난 현상으로 보인다.
5천여 종의 포유류 중 폐경 후 연장된 수명을 사는 것은 육상에서는 인간이 유일하고, 바다에서는 들쇠고래, 흑범고래, 범고래, 일각돌고래, 벨루가고래 등 이빨고래류 5종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구팀은 지난해 10월 아프리카 우간다 서부 키발레 국립공원 내 야생 침팬지 암컷들이 폐경을 겪은 후 공동체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고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여성이 폐경 후 손자를 돌봄으로써 자녀 출산율과 손자 생존율을 높여 자기 유전자가 후손에게 더 많이 전달되게 적응 진화한 것이라는 ‘할머니 가설’로 폐경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다른 동물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지는 불분명하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이빨고래의 폐경 진화 가설들을 검증하기 폐경을 겪는 이빨고래류 5종에 대한 새로운 비교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이빨고래 다섯 종의 암컷은 비슷한 크기의 다른 종 암컷보다 더 오래 살 뿐만 아니라 같은 종 수컷보다 수명이 훨씬 긴 것으로 나타났다. 범고래의 경우 수컷은 보통 40살 정도에 죽지만 암컷 범고래는 80대까지 살 수 있다.
연구팀은 이빨고래 암컷에서 폐경은 번식 기간은 늘리지 않으면서 수명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며 폐경은 번식 기간이 딸이나 손녀와 겹치지 않게 하면서 자녀 및 손자·손녀와 함께 살며 도울 수 있는 기간을 늘려준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결과는 종에 이익이 될 때 폐경이 진화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9천만 년의 시간 차이 등 명백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고래가 수렴적 생활사를 보이는 것은 폐경 진화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 출처 : Nature, Samuel Ellis et al., ‘The evolution of menopause in toothed whales’,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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