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재정을 운영할 때 순자산 중심으로 발생주의 회계를 활용해야 한다는 학계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미 발생한 부채만 보지 않고 미래의 재정 부담 요인까지 포괄적으로 살펴 봐야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쳐도 대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회계연구원·한국조세재정연구원·한국회계학회는 13일 서울 영등포구 FKI 타워에서 ‘회계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는 ‘회계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가?(Public Net Worth)’의 저자인 제이컵 솔(Jacob Soll) 서던캘리포니아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교수가 강연을 진행했다. 솔 교수는 2017년 그리스 금융개혁 및 부채관리에 관한 그리스 정부의 자문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솔 교수는 “미국에서 많은 부채로 인해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고, 중국도 부동산 시장이 무너질 수 있는 등 강대국도 예상치 못한 위기를 겪을 수 있다”면서 “정부는 투명하게 부채를 공개해야 하고, 국민도 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솔 교수는 “한국의 경우 부처별로는 회계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지만 포괄적인 대차대조표는 통합되지 않았다”면서 “뉴질랜드가 해낸 발생주의 기반 포괄적인 정부 대차대조표를 만들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발생주의는 현금주의와 다른 개념으로, 거래나 사건 그리고 환경이 기업에 미치는 재무적 효과를 현금이 수취되거나 지급되는 기간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거래가 발생한 기간에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비용과 수익, 부채 규모 등 경영성과 파악이 용이하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국내 정부 회계·행정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정부 회계 현안을 공유하고 문제점 및 개선 방안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솔 교수도 함께했다.
김봉환 서울대 교수는 “‘2800조원이나 되는 국가 재정 운영을 복식부기 정보 없이 할 수 있느냐’고 항상 주장해 왔는데 제이컵 솔 교수 얘기를 듣고 힘을 얻었다”면서 “복식부기 재무 정보에는 중앙 정부만 들어가 있고, 지방정부나 공공기관은 빠져 있다. 연금, 건강보험 등의 재정 상태를 복식부기 기반으로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식부기는 기업의 자산과 자본의 증감 및 변화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계정과목을 통해 대변과 차변으로 구분해 이중기록 계산이 되도록 하는 부기 형식을 말한다. 주로 발생주의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정도진 중앙대학교 교수는 “발생주의 회계 기반의 국가부채 파악과 재무 정보의 중요성은 연구 결과로도 입증이 되고 있다”며 “현금주의 회계의 장점은 현재의 정보를 잘 전달하는 것이지만 미래에 대한 정보 전달은 어렵다. 정치·행정가들이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정보 전달을 꺼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홍순만 연세대 교수는 “최근 출산율이 크게 하락하면서 정부의 미래 재정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 현재 정부의 재정 통계에는 이런 위험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회계 기준이 발전하면 상당 부분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올바른 재정 관리가 자동으로 이뤄지지 않기에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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