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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신약으로 불리며 국가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디지털치료제 기업들이 해외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불필요한 규제로 인허가부터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등재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국내시장에서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보니 해외로 눈을 돌리는 상황이다.
12일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라이프시맨틱스(347700)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의 호흡 재활을 돕는 디지털치료제 ‘레드필 숨튼’의 새로운 확증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디지털치료제는 의사가 처방하는 인지행동치료를 모바일 앱 등의 소프트웨어로 대체할 수 있게 한 치료제다. 숨튼은 산소포화도 기기와 연동해 COPD 환자의 호흡 상태를 파악하고 현재 상태를 분석해 적절한 운동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특정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는 목적으로 의사의 처방을 받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헬스케어 앱과 다르다.
당초 라이프시맨틱스는 작년 말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확증임상을 완료하고 올해 상용화에 나선다고 예고했다. 확증 임상은 신약 개발로 치면 3상 임상과 같은 후기 단계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숨튼이 상업화에 성공할 경우 불면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정신과 질환에 주로 쓰이던 디지털치료제 시장에서 호흡재활 분야로 저변을 넓히며 차별화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그러나 확증 임상에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하자 환자 수를 늘리는 등 임상시험계획을 대폭 정비하고 확증 임상 절차를 다시 밟게 됐다. 라이프시맨틱스는 국내 인허가를 먼저 확보하려던 계획을 바꿔 임상 진행과 함께 해외 시장 진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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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허가된 디지털치료제는 불면증 치료에 쓰이는 ‘솜즈’와 ‘웰트아이’ 2종 뿐이다. 그 중 ‘솜즈’만 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고대안암병원 등 일부 상급종합병원에서 비급여로 처방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3∼5년간 비급여로 처방하면 이 기간 동안 수집한 임상자료를 활용해 신의료평가를 받아야 정식으로 건강보험에 급여 등재를 할 수 있어 건보 적용은 더욱 요원하다. 통상 신의료평가에 걸리는 시간만 250일이라 급여 등재까지 4년 넘게 걸린다. 국내 디지털치료제 3호로 점쳐졌던 숨튼의 임상 지연으로 허가 명맥은 1년 가까이 끊겼다.
디지털치료제는 신약보다 개발 소요기간이 짧으면서도 질병을 예방, 치료하고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유망 산업으로 꼽힌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4년 56억 달러에서 2030년 173억4000만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미 수십년간 검증된 치료법을 모바일 앱으로 옮긴 경우에도 식약처 인허가는 물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평가 등을 거치는 이중규제가 적용돼 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숨튼이 확증임상에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이유도 디지털치료제의 특성을 반영한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이 미비한 영향이 컸다는 지적이다. 어렵게 상업화에 성공한 후에도 정식 급여 등재까지 독일 등 선진국보다 최소 1~2년이 걸리다 보니 글로벌 경쟁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디지털치료제 개발 업체 관계자는 “2017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치료제 리셋을 선보이며 한때 기업가치가 21조 원에 달했던 미국 페어테라퓨틱스가 6년 만에 파산신청을 하게 된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보험시장 진입 실패라는 시각이 많다”며 “이제 막 태동하는 디지털치료제 시장의 성공적인 안착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중 규제를 간소화하고 정식 급여화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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