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밸류업’에 힘입어 주주환원 요구가 높아진 분위기 속에서 상장사의 자사주 취득 건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신고 금액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적 혜택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날까지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상장사의 자사주 취득 신고 금액은 2조922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9.08% 감소했다.
코스피 상장사의 자사주 취득 공시 건수는 39건으로 전년 36건보다는 늘었다. 신탁취득이 22건, 직접취득이 17건이다. 그러나 취득 신고 금액은 1조9608억원에서 1조9405억원으로 1.04% 감소했다. 코스피 상장사 839개 가운데 5%도 채 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올해 자사주 취득 신고 규모는 기아가 50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KB금융 3200억원, 하나금융지주 3000억원, 신한지주 1500억원, 현대모비스 1500억원 등이다.
코스닥 상장사는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코스닥 상장사의 자사주 취득 공시는 35건이었지만 올해는 29건으로 줄었다. 2번 이상 공시한 중복 건수를 제외하면 코스닥시장 전체 상장사 1714개 가운데 1.63%에 해당한다.
자사주를 취득하겠다고 신고한 금액도 전년 동기 3404억원에서 1517억원으로 55.41% 급감했다. 올해 코스닥 상장사 중 취득 규모가 가장 큰 곳은 500억원어치를 취득하겠다고 신고한 휴젤이다. 이어 메가스터디교육 200억원, 아프리카TV 100억원, 삼목에스폼 80억원 순이다.
자사주 취득은 기업이 자기자금으로 자사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자사주를 취득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 일시적으로 주가 부양 효과를 낸다. 이날 NH투자증권이 5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취득하고 소각하겠다고 공시하자 52주 신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발표하면서 올해 주식시장에선 기업가치 제고, 주주환원 강화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상장사들은 아직 소극적인 모습이다.
코스닥 상장사는 상대적으로 재무가 열악해 현금을 아끼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의 현금으로 진행되는데 여전히 금리 수준이 높은 데다 경기 침체 우려가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스피 상장사는 주가가 많이 오른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주가 부양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1월 부진을 겪던 코스피 지수는 2월에만 5.74% 상승했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베일을 벗었지만 기업들의 주주환원에 대한 인센티브가 구체화되지 않은 점도 적극적인 자사주 취득을 망설이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등으로 주가 저평가를 해소한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기업 ‘밸류업’ 세제 지원 방침에 따라 구체적인 지원안을 검토 중이다. 법인세 감면 등 구체적인 세제 지원안을 확정해 상반기 중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은 아직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구체적인 혜택이 발표되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취득은 결국 현금 문제라 부담스러운 기업도 있을 것”이라며 “일부는 인센티브가 도입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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