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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파’ 박목월 미발표 시 166편 공개…”시로 얽히지 않은 적 없어”

이투데이 조회수  

유족으로서, 아들로서 꼭 말하고 싶은 부분은 박목월 시인의 전 생애가 시로 얽히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걸 기억해달라.

연합뉴스박목월 시인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목월 시인 미발표 육필 시 공개 기자회견에 앞서 박목월 시인 육필 시 노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12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인 박목월 미발표 육필 시 공개 기자회견’에서 박목월의 아들인 박동규 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박목월은 해방 이후 암흑기에서부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를 안고 살아간 인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목월은 1939년 문예지 ‘문장’을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1946년 조지훈, 박두진 등과 청록집(靑鹿集)이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청록집에 실린 그의 대표적인 시가 바로 ‘나그네’이다. 이후 3명의 시인은 ‘청록파’로 불렸다. 농촌 특유의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 풍경을 노래했던 박목월의 시 세계는 주로 ‘목가적’, ‘관조적’, ‘자연적’ 등의 단어로 정의된다.

특히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주로 자연주의적 배경을 바탕으로 인간을 노래했다. 쓸쓸하고 외로운 풍경이지만, 거기에는 단독자로서의 인간이 있고 깨끗하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원형이 숨을 쉬고 있다.

연합뉴스박목월 시인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목월 시인 미발표 육필 시 공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정권 단국대 교수, 박동규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이번 박목월 미발표 육필 시 공개는 우정권 단국대 국문과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우 교수는 “30년 전 박동규 선생님의 집에서 노트의 존재를 알게 됐다”라며 “그 이후로 계속 이 노트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고, 작년 4월에 박동규 선생님이 공개를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오늘 이 자리에 섰다”라고 밝혔다.

우 교수는 노트의 방대한 분량을 혼자 분석하는 데 한계를 경험했다. 이에 박덕규 단국대 명예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와 함께 지난해 8월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를 결성했다. 위원회는 동리목월문학관에 기증한 18권, 박동규 교수 자택에 보관한 62권의 노트에서 총 166편의 시를 선별했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유성호 교수는 “노트에서 선생님이 초고를 썼다가 시집으로 발간하는 과정에서 퇴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라며 “초고와 정식 발간된 시를 같이 보면서 박목월의 시상과 어휘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박목월 시인의 미발표 육필 시가 적힌 노트.

콩꼬투리

하얀 구름
동동
여름도 안 갔는데

그 콩꼬투리
맺었을까 하고
아기 산비둘기
엿보고 가고

상기
콩밭에는
파란 콩꽃
피었는데

그 콩꼬투리
맺엊을까 하고
달밤에는 아기 꿩이
엿보고 가고

알려진 것처럼 박목월은 동시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그는 문단에 정식 데뷔하기 전에 ‘이슬비’, ‘선물’, ‘제비마중’ 등 동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노트에서도 동시가 다수 발견됐는데, 동시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은 대략 60~70편이었다. 특히 인간과 자연, 사물과 사물이 서로 조화롭게 대응하는 관계를 형상화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콩꼬투리’라는 작품이다.

한편 우 교수는 “흔히 박목월은 ‘나그네’처럼 자연풍경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내용의 시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노트에서는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6ㆍ25 전쟁의 참혹함이나 해방의 기쁨 등을 이야기한 작품들이 꽤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슈샨 보오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이 작품은 6ㆍ25 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구두닦이 소년의 모습을 담았다. 일상의 생활에서 만나는 구두닦이 소년을 향한 시인의 관심과 사랑, 깊은 동정이 스며있다.

우 교수는 “이번 기회에 이런 시들이 발표되면서 박목월도 시대적 상황과 전혀 거리가 먼 작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길 바란다”라고 설명했다.

이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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