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의 인공지능(AI) 승부수가 통했다. 갤럭시S24 초도 판매량이 전작보다 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시장 점유율 20%의 벽이 무너진 것은 물론, 애플에 ‘스마트폰’ 왕좌를 내줬다. 프리미엄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애플인 만큼, 삼성전자가 앞으로도 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노태문 사장은 최초의 AI폰으로 응수했다. S24 시리즈가 ‘역대급’ 초도 판매량을 올리면서 갤럭시폰의 재기와 애플 견제를 동시에 노렸던 노 사장의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11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17일까지 초기 3주간 S24 시리즈 전세계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전년 동기 S23 시리즈 판매량 대비 8%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기할만한 점은 선진 시장에서의 약진이다. 미국에서는 14%포인트, 서유럽에서도 28%포인트 더 팔렸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측은 “미국, 서유럽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서유럽의 경우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주요 국가에서 초기 예약 주문량이 상당히 높았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안방에서 애플 견제에 성공했다. 한국 판매량이 전작 대비 22% 증가했기 때문이다.
구매여력이 높은 선진 시장과 달리 기타 지역 판매량은 18% 감소해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S24 시리즈 중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최고가인 울트라로 전체의 52%를 차지했다. 전작의 경우, 울트라 비중이 57%에 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소폭 줄어든 것이다. 쿼드 텔레 시스템을 적용, 광학 수준의 고화질 2·3·5·10배줌을 구현하고 나이토그래피 성능이 향상되는 등 카메라 개선이 이뤄짐에 따라, 삼성전자는 출고가를 최대 12만원 가량 올렸다. 200만원(1TB 기준)이 넘는 가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은 한 단계 낮은 플러스 모델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S24 모델 중 가장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인 모델은 따로 있다. 플러스다. S24 플러스 비중은 21%로, 전작과 비교하면 판매량이 53%나 뛰었다. 이 같은 판매 신장은 S24에 탑재된 생성형 AI 기능 때문이다. 생성형 AI 활용을 위해서는 고용량 D램이 필요하다. S24 플러스 D램 최저 용량은 12GB, 전작보다 4GB 늘었다. 합리적 가격으로 생성형 AI를 사용해보고 싶은 사용자들이 플러스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강민수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갤럭시 S24를 출시하며, 온디바이스 AI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컨셉을 제시, 스마트폰의 다음 세대 혁신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S24 시리즈의 초기 판매호조는 AI 기기의 확산이라는 삼성전자의 방향성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분석했다.
S24의 실시간 통역, 서클 투 서치 등 생성형 AI 기능은 호평 받고 있다. 미국 소비자 전문지 컨슈머리포트는 S24 울트라에 대해 87점을, 플러스에는 85점을 줬다. 덕분에 사전 판매량도 신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만 121만대가 팔려 S 시리즈 사상 최단 기간 100만대 돌파 기록을 갈아치웠다. 네덜란드, 인도에서도 사전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삼성전자의 상반기 전략(플래그십) 스마트폰인 S24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터다. 삼성전자라는 브랜드를 전세계 시장에 각인시킨 ‘갤럭시폰’의 재기다.
갤럭시폰은 최근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이 프리미엄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는 가운데, 기술력을 보강한 중국폰이 중저가 시장에서 영역을 넓히면서 ‘넛크래커’ 신세가 됐다. 특히 미래 고객인 10~20대층의 아이폰 선호도가 강해지면서 갤럭시폰 이탈현상이 뚜렷해졌다.
마케팅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스마트폰 상향 평준화로 갤럭시폰은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됐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한다면 당장 수년 내 갤럭시폰은 중국폰에도 밀릴 수 있는 상황”이라며 “게다가 스마트폰은 삼성전자의 주력사업 중 하나다. 갤럭시폰의 고전은 회사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수익 기반을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고객층을 발굴하기 위해 새로운 라인업을 선보였다. ‘접는폰'(폴더블폰)인 Z시리즈다. 공정이 까다로운 Z 시리즈는 호불호가 갈리고, 생산량을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바 형태의 스마트폰이 판매량을 받쳐줘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평균판매단가(ASP)가 높은 S 시리즈는 예전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처지다. 최근 3년 간 S 시리즈 연간 출하량은 3000만대 수준, 노트 시리즈 흡수 효과가 더해진 점을 감안하면 연간 출하량은 줄어들고 있다.
미래 고객 확보에서도 빨간불이 켜졌다. 스마트폰 교체가 잦은 20대의 아이폰 사용자 비중은 압도적이다.
갤럭시 브랜드 선호도가 낮아지고 핵심 타깃층 이탈이 가속화된 결과,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뒤집혔다. 시장조사업체 IDC 분석 결과, 지난해 애플의 출하량은 2억3460만대이고, 시장 점유율은 20.1%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2억2660만대를 출하해 시장의 19.4%를 가져갔다. 2010년 이후 13년 만에 애플에게 밀린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에게 뼈아픈 지점은 따로 있다. 스마트폰 시장이 전년 대비 약 5% 위축됐음에도 애플의 점유율은 3.7%포인트 증가했다. 발열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과감히 자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탑제까지 포기하고 중저가 라인업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지만 통하지 않았다. 브랜드 충성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브랜드 충성도는 프리미엄폰 시장에서의 위상과 직결된다. 400달러 이상 프리미엄폰은 지난해 전체 스마트폰 시장의 24%까지 성장했다. 이 시장의 강자는 애플, 점유율이 71%에 달한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의 비중은 16%에 그친다. 애플의 4분의 1 수준이다.
지난 2013년 S4가 7000만대로 최고치를 찍은 뒤 2016년(4750만대)에 4000만대로 떨어졌던 S 시리즈 연간 판매량은 간신히 3000만대를 유지하는 정도다. ‘플래그십 출하량 두 자릿수 성장’을 위해선 S 시리즈의 반등이 필요하다. 노 사장이 AI폰 카드를 꺼내든 이유다.
현재까지 AI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는 폰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특히 개인정보 등 민감한 정보를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온디바이스 AI폰은 삼성전자가 개척 중이다. 시장 선점 효과를 확실히 누릴 수 있는 입장인 셈이다. S24는 신기능 적용에도 초반 품질 이슈가 불거지지 않았고, 판매량까지 호조다. 애플 선호도가 높은 미국, 서유럽에서의 초반 판매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건 큰 성과다. 덕분에 “S24 시리즈는 전작 대비 두 자릿수 이상 판매하는 게 목표”라고 했던 노 사장의 공언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에서는 S24 흥행이 삼성전자의 판매 전략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AI를 발판삼아 노트북, 웨어러블, 생활가전, TV까지 전 제품 판매량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애플 생태계에 대적할 무기로 AI를 내세운 것이다. S24는 삼성전자의 AI 기술력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동반 판매 상승을 유도할 수 있다.
또다른 마케팅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AI 기능을 탑재했다는 것만으로 ‘혁신적’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다”며 “실 사용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만큼, 기술력 입증과 브랜드 재각인 효과를 함께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시장 내 입지 확대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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