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사상 최대인 약 36조원 규모로 반도체 ‘빅펀드(대기금)’를 조성한다. 미국의 기술 통제에 맞서 자국 첨단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9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국가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 3차 펀드를 조성 중이다. 펀드 규모는 앞서 1·2차 펀드 금액을 뛰어넘는 2000억 위안(약 36조6000억원) 이상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현재 베이징·상하이 등 지방정부와 중국 청퉁홀딩스, 국가개발투자공사와 같은 국유기업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실제 기금 출범까지는 몇 달이 걸릴 것으로 블룸버그는 예상했다.
이는 최근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격화 속에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기술 통제가 한층 강화된 가운데 나온 움직임이다. 미국은 현재 중국에 대해 반도체 기술·장비는 물론 첨단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규제하는 데다 미국 상무부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중국 기업은 외국 반도체 기업과 협력하는 것도 차단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허점이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최근엔 네덜란드·일본·독일·한국 등 동맹국에 중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 기술 장비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하라고 압박을 넣고 있다.
게다가 챗GPT 개발사인 미국 오픈 AI가 최근 텍스트를 영상으로 만드는 ‘소라(Sora)’를 공개하면서 중국 내에선 미·중 AI 패권 경쟁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졌다. 특히 AI 발전을 위해 더 강력한 AI 컴퓨팅 파워가 필요한 상황에서 고성능 반도체 칩을 확보하지 못하면 중국 AI 산업 발전에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된 것이다.
이는 중국이 올해 정부업무보고에서 과학기술 혁신과 과기 인재 육성을 최우선 과제로 꼽은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 중앙정부는 올해 과학기술 연구 예산도 전년보다 10% 늘린 3708억 위안(약 515억 달러)으로 책정했다. 2015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반도체 대기금은 중국 정부의 국가 반도체 육성 전략 방침에 따라 출범했다. 1기(2014년)와 2기(2019년)에 걸쳐 조성한 펀드 액수는 3400억 위안(약 65조원)에 달한다. 조성된 기금은 그간 중국 내 100여 개 반도체 제조, 설계, 패키징, 테스트, 장비, 소재 등 기업에 투자됐다.
특히 대기금 투자를 받는 기업은 일반적으로 중국 정부가 지원사격하는 업체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중신궈지(SMIC)와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회사인 양쯔메모리(YMTC) 등이 꼽힌다.
다만 투자 기준이 불투명한 데다 투자에 따른 책임도 없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불거지면서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2022년 반도체 부문에 대해 반부패 조사를 벌여 반도체 대기금 수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낙마했고, 이는 반도체 대기금을 쇄신하는 계기가 됐다.
재정비를 마친 반도체 대기금은 지난해 말부터 다시 투자에 나섰다. 지난해 말에는 설립 2년 차밖에 안 된 신생 메모리기업 창신신차오메모리에 100억 위안 이상을 투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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