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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학교 못가?”… 영화 ‘고속도로 가족’ 통해 돌아본 ‘K-복지모델’ [오코노미]

이투데이 조회수  

(출처= 영화 ‘고속도로 가족’ 포스터)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아침, 거리에는 삼삼오오 등교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자기 몸만한 책가방을 맨 채 부모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도 있고 어느새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등교하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일상이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은 아니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속 은이(서이수 분)에게 이런 평화로운 일상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은이는 9살임에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은이의 가족이 특정한 거주지 없이 고속도로와 휴게소를 떠돌며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우(정일우 분)의 투자 실패로 모든 것을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된 이 가족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친 텐트를 집으로, 밤하늘의 달을 조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출처=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컷)

그러던 어느 날 이 가족에게 다르게 살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영선(라미란 분)을 만난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휴게소 방문객들에게 돈을 구걸하고 있던 기우는 휴게소를 빠져나가려던 영선에게도 돈을 요구한다. 영선은 그냥 기우를 무시하고 가려다 기우와 함께 있는 아이들이 마음에 쓰여 돈을 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영선은 다른 휴게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는 기우를 다시 한 번 마주치게 된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영선은 자동차가 오고 가는 위험한 공간에 아이들을 방치한 기우 부부에게 분노를 느끼고, 기우가 자신을 모른 채하자 기우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신고한다. 영선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기우는 사기 및 횡령 전과까지 드러나 구속되고, 영선은 오갈 데 없는 기우의 아내 지숙(김슬기 분)과 은이, 정책(박다온 분)이 눈에 밟혀 이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중고가구매장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이들은 그곳에서 가족이 된다. 지숙과 아이들은 영선이 제공하는 공간과 보살핌에 안정감을 느끼고 영선은 지숙과 아이들과 함께하며 아이를 잃은 상처를 치유해 간다. 그러나 또래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가구매장 일을 도우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세 사람의 일상이 이들을 찾아온 기우의 등장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지숙과 아이들은 다시 기우와 함께 고속도로를 방랑하는 삶을 이어가게 될까?

(출처=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컷)

2022년 11월 2일에 개봉한 영화 ‘고속도로 가족’은 지난달 2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며 공개와 동시에 4일 연속 한국 영화 TOP10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를 감상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책임감 없는 부모의 모습에 답답함을 호소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특히,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괴물’ 등으로 잘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연상시키는 영화를 만들어낸 신예 감독 이상문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화를 연출한 이상문 감독은 MBN 시사 교양 프로그램 ‘기막힌 이야기-실제상황’ 297화에도 소개된 적 있는 ‘고속도로 위 가족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나 구체적인 인물 설정은 실화와 다르지만, 어딘가 정말 기우와 같은 사람이 존재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다.

영화 속 기우와 지숙, 은이와 정책처럼 우리 사회에는 일정한 거주지 없이 생활하거나 실제 거주지와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달라 행방을 알 수 없는 거주불명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행정안전부의 거주불명자 명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명단에 포함된 이들의 수는 15만 220명에 달한다. 물론, 2009년 10월 ‘거주불명자 제도’가 도입되며 무단 전출할 경우 주민등록이 말소 처리되던 이전과 달리 거주지가 파악되지 않아도 사회보장 혜택을 대부분 유지할 수 있게 됐지만, 주소지가 없기 때문에 단전이나 단수, 보험료 체납 등의 위기정보를 바탕으로 파악하는 위기가구에 포함되지 못해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관악구 우리동네돌봄단 활동 모습 (연합뉴스)

이에서울시의 ‘우리동네 돌봄단’이나 ‘명예 사회복지공무원’ 운영, 서울 강동구의 ‘인(人)플러그 사업’, 경기도의 ‘위기징후 빅데이터를 활용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 등과 같이 서류를 넘어 현장으로 향하는 다양한 위기발굴 시스템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 시스템 모두 일정한 거주지가 있어야 제공 받기 원활한 구조라 현장을 찾은 이들의 도움이 거주불명자들에게까지 전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행정부와 각 지자체에 따르면 거주불명자의 대부분이 개인 간 채무나 범죄, 가정문제 등의 이유로 이사하고도 기간 내 전출입 신고를 하지 않거나 고의로 숨어 사는 이들로, 범죄 피해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거나 전과가 있다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이에 보건복지부에서는 위기가구 중 행방을 파악할 수 없는 이들의 소재를 경찰력을 투입해 추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출처=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컷)

거주불명자의 자녀가 교육권을 침해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매년 교육청에서는 소재 미파악 취학 아동을 조사하고 있는데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시에서 취학통지를 받은 아동 중 예비소집에 불참한 아동은 총 7706명이며 이들 중 홈스쿨링이나 취학유예 의사를 밝히지 않은 소재불명 아동은 총 180명이라고 한다. 교육청이 가정방문, 경찰 협조 의뢰 등을 통해 해당 아동들을 추적하고 있지만, 추적된다고 해도 거주지가 불명확한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거주불명자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나 범죄 피해, 교육권 침해 등에 노출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영화 ‘고속도로 가족’의 영선처럼 정부뿐 아니라 각 개인도 주변에 사회 안전망에 걸려있지 않은 이들이 있지는 않은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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