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왕보경 기자】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커피의 민족’일지 모른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커피소비량은 연간 405잔이다. 전 세계 1인 커피 소비량인 152잔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차이 난다. 지난 2022년 3조1717억원이었던 국내 커피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8조6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최근 들어서는 ‘캡슐커피’ 시장의 규모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올 한해 국내 캡슐커피 시장 규모는 4041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3998억원, 2022년 3695억원에 이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캡슐커피 시장은 지난 2020년 전환기를 맞이했다. 성장의 원인은 ‘코로나’ 로 설명할 수 있다. 팬데믹 이후로 커피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인 2020년 캡슐커피 시장 규모는 1980억원이다. 전년 1387억 대비 42.7% 성장했다. 2018년 1037억원이던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두 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이렇듯 국내 커피 시장은 물론 캡슐커피 시장의 규모까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몇 년간 커피 시장의 판도를 뒤바꿨다고 할 만큼 높은 영향력을 행사한 캡슐커피의 성장은 어디까지일까.
‘버튼 한 번에 커피 한 잔’
캡슐커피는 원두를 알루미늄 용기 등에 밀봉해 진공 포장한 커피다. 캡슐커피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생두를 탈피하고 정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블렌딩과 로스팅 과정을 통해 원두로 가공한다. 마지막으로 가공된 원두를 분쇄하고, 탬핑한 뒤 진공 포장하면 캡슐커피가 완성된다.
이렇게 제작된 캡슐을 머신에 넣고 버튼만 누르면 한 잔 분량의 에스프레소가 추출된다. 캡슐커피는 간편할 뿐만 아니라 취향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진 원두를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온, 고압으로 빠르게 커피를 내려 향과 맛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도 이점이다.
단, 커피 머신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부담이다. 캡슐커피 시장이 활성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기기마다 사용할 수 있는 캡슐이 한정돼 있어 불편함을 호소하는 소비자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다수 기업에서 타 기기와 호환 가능한 캡슐을 출시하고 있다.
원조는 누구? 바로 ‘네슬레’
캡슐커피는 지난 1976년 전 세계 1위 식품 기업 네슬레에서 처음 개발됐다. 네슬레는 최초의 캡슐커피 머신 네스프레소를 선보이며 캡슐커피 시장의 선도자로 나섰다. 이후 네슬레는 캡슐커피를 특허 출원했다. 유럽 특허 출원은 1991년에, 국내 특허 출원은 1992년 시작됐다.
20년이 흘러 네스프레소의 특허가 소멸한 이후 시장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변화했다. 일리, 큐리그 등 다양한 기업들이 진출하며 시장이 확대됐을 뿐 아니라, 각 업체에서 다양한 호환 캡슐을 출시하며 종류도 다양해졌다.
국내에도 다양한 기업들이 진출했지만, 캡슐커피의 원조 네슬레가 캡슐커피 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네스프레소는 현재 더현대서울,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등에 단독으로 입점할 만큼 규모를 키워왔다. 네슬레사의 제품은 네스프레소,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스타벅스 앳홈 등으로 판매처와 종류가 다양하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네슬레사의 젝픔의 국내 점유율은 83.2%에 달한다. 그 외로 일리(13.8%), 큐리그(1%), 까라로(0.6%), 라바짜(0.2%) 등 해외 브랜드 대다수가 나머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캡슐커피의 원조 네슬레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 받은 이유는… ‘코로나·편리함·가성비’
오랜 역사와 달리 캡슐커피가 국내에서 주목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소비자 인식이 낮았을 뿐 아니라, 믹스 커피 등 다른 종류의 커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탓에 성장 속도가 더뎠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계륵 취급을 받던 캡슐커피 시장이 성장한 이유를 ‘홈카페’ 열풍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난 2020년 팬데믹으로 야외 활동이 제한되고 재택 근무가 시행되면서 집에서 커피를 즐기는 홈카페족이 늘어났다.
코로나19로 인해 홈카페 열풍이 불면서 캡슐커피 시장의 규모가 덩달아 커졌다.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씨는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 바깥에 나갈 일이 줄어들면서 캡슐커피 머신을 구매했다”며 “편리하기도 하고 홈카페 유행을 좇아 구매한 것도 있다”고 구매 이유를 설명했다.
이를 증명하듯 이마트의 캡슐커피 매출은 최근 몇 년간 급성장했다. 지난 2018년까지 이마트의 원두커피 매출은 캡슐커피 매출보다 높았다. 원두커피는 51%, 캡슐커피는 49%의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다음 해인 2019년부터 캡슐 비중이 60%까지 증가했고, 원두커피 매출 비중은 40%로 하락했다. 2020년에는 67%, 33%로 캡슐커피 매출 비중이 원두커피 매출 비중의 2배를 넘어섰다.
홈카페 열풍과 함께 당시 소비자들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는 편리한 상품을 선호하는 현상인 ‘편리미엄’ 기조가 유행하면서 캡슐커피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당시 홈카페 수요가 증가하면서 원두커피와 캡슐커피 수요 모두 확대됐다. 원두커피는 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비교적 번거롭고 복잡하다. 반면 캡슐커피는 머신에 넣기만 하면 짧은 시간 내에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다. 이러한 간편함 덕에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과반수 이상의 소비자가 ‘편리함’을 소비 이유로 꼽았다. ‘편리하게 커피를 추출할 수 있어서’라는 답변이 61.4%를 차지했고, ‘맛이 좋기 때문에’라는 답변이 29.2%를 차지하며 뒤를 이었다.
커피 전문점에 비해 커피를 저렴하게 마실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저가 커피 브랜드에서 아메리카노를 1500원~2000원 판매하는 반면, 캡슐커피는 커피 머신을 구매해야 하는 초기 비용을 제외하면 한 잔당 800~1000원꼴로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다.
다이소도 진출하는 캡슐커피 시장… 성장은 어디까지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 대다수가 캡슐커피 제품을 출시했다. 현재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이디야, 폴바셋, 파스쿠찌 등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캡슐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개인 카페들도 캡슐커피 제작에 나섰다. 그 외에도 티몬, 노브랜드(SSG) 등 유통업체가 PB 제품을 선보이며 경쟁 구도가 다각화되고 있다. 캡슐커피 수요가 늘어난 만큼 업체에서도 시장에 뛰어들어 시장 점유를 위해 힘쓰고 있는 것이다.
캡슐커피의 인기에 힘입어 캡슐뿐 아니라 캡슐커피 머신을 출시하는 기업도 늘었다. 실제로 국내 가정용 캡슐커피 머신 시장 규모는 지난 몇 년간 1000억원을 웃돌았다. 2022년에는 1049억원, 2023년에는 1015억원에 달했다. 이에 LG전자, 동서식품 등 국내 기업에서도 새롭게 캡슐커피 머신을 출시했다.
최근에는 생활용품 판매점 다이소까지 캡슐커피 시장에 진출했다. 다이소는 캡슐커피 6종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홈카페 수요가 증가하면서 간편하게 음용할 수 있는 캡슐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다이소에서도 캡슐커피 시장에 진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정 내 소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물론 호텔 업계에서도 최근 캡슐커피를 구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한화 더 플라자 호텔은 디럭스를 제외한 객실에 캡슐커피과 캡슐 3종을 제공한다. 신라 호텔은 요청 고객에 한해 캡슐커피 머신과 캡슐을 제공하고 있다.
사무실 내에서도 캡슐커피 머신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사내 복지로 제공되는 커피의 경우, 이전까지 커피믹스, 스틱커피 등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최근에는 캡슐커피 머신을 구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편리함은 물론 각자의 선호에 따라 다양한 맛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제는 캡슐커피가 트렌드를 넘어서 일종의 문화이자, 생활 방식의 한 부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회사에서도 캡슐커피 머신을 사용하고, 신혼부부들도 캡슐커피 머신을 필수 가전이라 생각할 만큼 일상에 스며들었다”며 “가성비와 맛까지도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만큼 관련 시장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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