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벤치마킹 대상인 일본 증시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덩달아 일본에 투자하는 펀드 수익률이 개선됐고,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보관 금액도 사상 처음으로 40억달러 고지를 찍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일본 경제가 살아나면서 주식시장도 상승 흐름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7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SEIBro)에 따르면 이달 4일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보관 금액은 사상 처음으로 40억달러를 돌파했다. 다음날 차익 실현이 발생하면서 5일 기준 보관액은 39억8000만달러로 내려갔지만, 시장에서는 일학개미(일본 증시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가 꾸준히 유입 추세인 만큼 조만간 40억달러대를 회복할 것으로 본다.
예탁원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만 해도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일본 주식 규모는 12억5353만달러에 불과했다. 2016년까지 12억달러대를 유지하던 일본 주식 보관액은 2017년 16억달러대로 불어났고,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터진 2020년에는 26억달러로 확 늘었다. 이후 다시 횡보하던 일본 주식 투자는 작년 말 37억3857만달러로 치솟았다. 그리고 약 2개월 만에 사상 최대치에 도달했다.
일학개미가 많아지는 건 일본 증시 흐름이 그만큼 좋아서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지난달 22일 ‘버블 경제’ 시절이던 1989년 12월 29일 기록한 최고치(3만8915.87)를 34년 만에 갈아치운 데 이어 이달 4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4만선을 돌파했다. 닛케이지수는 7일에도 개장과 함께 4만472까지 오르며 4일에 기록한 장중 최고가(4만314)를 사흘 만에 경신했다.
일본 증시의 상승세는 해당 시장에 투자한 국내 펀드 수익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일본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3월 6일 기준)은 16.64%로, 이 업체가 집계하는 지역·국가 펀드 가운데 가장 높다. 인공지능(AI)을 등에 업은 북미 펀드 수익률(11.72%)보다도 5%포인트(p)가량 낫다. 같은 기간 중국 펀드 수익률은 0.24%에 불과하다.
일본 주식 투자 활성화의 기저에는 엔화 약세와 미·중 갈등 등이 깔려있다. 슈퍼 엔저로 2023년 일본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의 소비액은 사상 최고치인 5조3000억엔(약 47조431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슈퍼 엔저는 일본 주력 수출 제품인 운송장비 수출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미·중 분쟁은 일본의 반도체 장비 수출에 탄력을 더했다.
엔화는 올해 하반기에 강세로 전환할 수도 있다. 일본은행(BoJ)이 봄철 임금 협상인 춘투(春鬪) 이후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엔화 약세 기조가 끝나도 일본 주식시장의 투자 열기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도 살아나기 시작했고, 이 분위기가 내수 활력에도 기여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23년 일본 부동산 가격은 장기 추세를 크게 벗어나는 상승세를 보였고, ‘1년 후 토지 가격 전망’은 201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자산 가격 상승을 확인한 일본 소비자들이 주식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회계연도 일본 증시의 개인 투자자 주식 보유 비중은 17.6%로,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민 연구원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가계 자산은 예금에 집중됐지만, 5~10년 정기예금 금리가 0.2%에 불과해 낮은 임금상승률이 삶의 정해진 기반이었다”며 “디플레이션이 뇌리에 박힌 일본으로선 이번 부의 효과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