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힐 듯 잡히지 않던 소비자물가가 다시 3%대로 올라서면서 경기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물가는 올해 세수와 소비 지출, 부동산 경기, 기준금리 향방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변수다.
정부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물가 안정 대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지만 실효성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6일 발표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재반등한 것으로 확인되자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 하향 흐름이 다소 주춤해졌다”며 “정부는 최근 물가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여 2%대 물가가 조속히 안착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년 전보다 3.1% 오르면서 한 달 만에 다시 3%대에 진입했다. 특히 농산물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20.9% 올라 전체 물가를 0.80%포인트 끌어올렸다. 신선 과실은 41.2%나 폭등해 1991년 9월(42.9%) 이후 32년 5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문제는 고물가 기조가 정부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임금과 공공요금 인상, 환율 등 물가를 자극할 요인들이 산적한 상황이라 불확실성이 크다. 앞서 정부는 ‘2024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6%로 제시했다. 상반기에는 3% 수준을 유지하다가 하반기 이후 2%대 초반으로 낮아지는 경로다.
하지만 누적된 고물가·고금리 영향으로 올 들어 소비 여력 감퇴가 완연하다. 기업 현장에서 산출되는 지표에서도 냉랭한 내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2월 기업경기실사 결과를 보면 기업 체감 경기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로 41개월 만에 최저 수준까지 악화했다. 내수 부진까지 겹쳐 제조업·건설업 등을 중심으로 경기가 악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출 부문은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 연속 플러스 흐름을 이어가며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성장의 또 다른 축인 내수는 고물가가 지속되면 반등 시점이 계속 늦춰질 수밖에 없다.
물가 변수는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한은은 지난달 열린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를 3.50%로 묶으며 9연속 동결 기조를 유지했지만 고금리 후폭풍을 언제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2021년 8월 이후 2년 반 넘게 이어진 통화 긴축 탓에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대출 부실 위험이 커졌다. 고금리가 계속 민간 소비를 압박하게 되면 올해 2%대 성장률 달성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다만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으면 한은도 기준금리 인하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가계대출 증가 등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가 지연되면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정책 효과도 반감된다. 정부는 3~4월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 역대 최대 수준인 600억원을 투입해 사과·배 등 주요 먹거리 체감 가격을 최대 40∼50% 인하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정부 정책만으로 물가 안정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사과·배 등 농산물은 대체할 수 있는 수입품이 마땅치 않다”며 “정부로서는 소비자물가보다 근원물가를 통해 인플레이션 상황을 판단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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