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더리움을 비롯한 암호화폐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프로젝트에 예치된 자금 규모도 900억달러를 돌파했다. 2022년 테라·루나 사태 여파로 540억달러까지 내려앉은 지 약 2년 만이다. 디파이는 블록체인 업체들이 구축한 ‘스마트 콘트랙트(스마트 계약)’에 의해 코인을 거래하고, 예금을 넣듯 코인을 맡기거나 대출을 받는 서비스다.
6일 디파이 분석 사이트 디파이라마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전 세계 디파이 프로젝트에 예치된 자금 규모는 900억달러(약 120조원)다. 한달 전(620억달러) 대비 45.1%, 1년 전(500억달러)보다 80% 증가한 수준이다. 디파이 총예치금액(TVL)이 900억달러를 넘긴 적은 2022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오전 기준 가장 많은 자금이 예치된 디파이 프로젝트는 리도(Lido)다. 리도의 TVL은 350억달러로 한 달 전보다 54.2% 증가했다. 이용자는 이더리움 또는 폴리곤을 리도에 예치하고 이자 명목으로 암호화폐를 받을 수 있다. 가령 이더리움을 리도에 예치하면 스테이킹 이더리움(stETH)을 받을 수 있고, 이를 다른 디파이 프로젝트에서 활용하거나 이더리움으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리도는 2021년 TVL 기준 6위였으나, 지난 1월부터 급등해 2위와의 차이를 250억달러까지 벌리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TVL 상위 5개 프로젝트 중 상승세가 가장 가파른 것은 한 달 동안 157% 증가한 아이겐레이어(EigenLayer)다. 아이겐레이어는 재예치(리스테이킹)를 강조한 프로젝트다. 이용자는 아이겐레이어에 이더리움을 예치한 뒤 이더리움을 인출하지 않고도 또 다른 프로젝트에 한 번 더 예치할 수 있다. 최근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로부터 1억달러 투자를 유치해 상승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디파이 대출 프로젝트인 에이브(AAVE)의 TVL이 한 달 동안 48.1% 증가한 것도 눈에 띈다. 디파이 대출은 일반적인 대출과 유사하지만, 금융기관의 통제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이용자가 에이브에 암호화폐를 예치하면, 또 다른 이용자가 이를 대출받은 뒤 예치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대출자는 대출받은 암호화폐로 더 높은 수익률을 주는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등 레버리지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디파이의 핵심은 탈중앙화다. 법정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 금융시장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은행 등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블록체인을 매개로 각종 금융거래나 투자가 가능하다. 루나·테라 사태와 세계 3위 규모 FTX 파산으로 자금이 빠져나갔지만, 비트코인 ETF 승인 등으로 암호화폐가 제도권으로 편입되면서 시장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오는 5월 이더리움 ETF 승인과 이더리움 거래 비용을 50~90% 줄일 수 있는 덴쿤(Dencun) 업그레이드 등 이더리움을 둘러싼 호재가 디파이 시장 활성화를 견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디파이 프로젝트 절대 다수가 이더리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지난달 암호화폐 거래소가 보유 중인 이더리움 규모가 11%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이더리움이 거래소가 아닌 디파이 시장으로 흘러갔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이 이더리움 단순거래를 통한 수익을 노리기보단 디파이 시장에서 추가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번스타인은 지난 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수익 창출 상위 10개 프로토콜 중 6개가 디파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투자자들이 블록체인 금융으로 다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디파이가 미래 금융의 한 축으로 손꼽히면서 관심도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자이온 마켓 리서치(Zion Market Research)는 지난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디파이 시장 수요가 2030년까지 2322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진입장벽이 높고 구조적 리스크를 해결해야 하는 등 과제도 산적해 있다. 디파이 TVL이 곧 1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디파이 시장의 전성기였던 2021년 여름(1800억달러)과 비교하면 아직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김지혜 쟁글 리서치센터장은 “전반적인 가상자산 가격 상승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 관심이 높아지면서 디파이를 통해 추가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졌다”라면서도 “가상자산 전용 지갑을 만들고 프라이빗 키를 직접 관리하며 거래비용을 내야 하는 디파이는 사용자경험(UX) 측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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